아주 오랜 옛날, 사막의 한 부족으로 이루어진 마을에 너무나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타니야’.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의 어떤 별보다도 반짝였으며, 그녀의 미소는 아침 햇살처럼 싱그러웠고 그 목소리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꾀꼬리의 지저귐이 저렇지 않을까 생각하게 할만큼 달콤했다.
마을의 모두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소중히 여겼다. 특히나 또래의 남자아이들은 언제나 타니야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의 눈길 한번을 간절히 원했다.
꼬마 산제이 역시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어렸을 때부터 타니야를 사랑했다.
그러나 타니야는 부족장의 딸로 늘 어른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고 모래 투성이의 지저분한 남자 아이가 그녀에게 말 붙일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한 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타니야를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건 산제이의 나이 일곱 살 때의 일이었다.
무척이나 달이 밝은 밤이었다. 다음 날은 타니야의 생일로 부족장은 이 아름다운 소녀를 자신의 딸로 보내주신 신께 감사를 드리며 매년 성대한 잔치를 벌이곤 했다.
잔치 중에는 저마다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타니야에게 전해 줄 기회가 있었지만, 마을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난했고 자신들이 준비한 보잘 것 없는 선물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타니야에게 건네 줄 용기가 없었다.
산제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해는 미장이인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주운 돌을 조각 내어 자그마한 소녀상을 만들었다. 타니야의 아름다운 얼굴을 떠올리며 매일 조금씩 소중하게 깎은 조각이었지만 차마 그녀에게 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매해 생일마다 마을에서 그나마 부유하고 지위가 있는 행상들은 자신의 자식들의 손에 보기드문 과일이나 화려한 옷감, 진귀한 보석들을 들려 타니야에게 바치곤 했다.
그 사이에서 자신의 조각을 내밀면 타니야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상상만으로도 산제이의 심장은 오그라들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로 한참을 뒤척이던 산제이는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어른들 몰래 움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날따라 달이 너무나 밝았기에 사막의 어둠도 두렵지 않았다. 혼자서 밤늦은 시간에 걷고 있자니 어른이라도 된 기분에 의기양양해진 산제이는 평소라면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마을에서 부유한 상인들의 거주공간 옆의 오아시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낮은 웅덩이 위로 비치는 달빛을 바라보며 무작정 걷던 산제이는 물가 옆 작은 야자나무 아래에서 사람의 형상을 발견하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반짝이는 그 두눈을 못 알아 볼 리가 없었다. 그건 분명 타니야였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제이는 타니아의 아름다움에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어 주변의 큰 바위뒤에 숨어 그녀의 아름다운 옆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라면 자신의 선물을 줘도 타니야가 다른 선물과 비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품안의 돌상을 꺼내어 물끄러미 바라보자 낮까지만 해도 보석처럼 매끄럽고 반질거리며 빛나던 그 돌이 유독 초라하게 느껴졌다. 타니야의 아름다운 모습에 자신을 잃은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고 앞으로 나서려던 그 순간, 타니야의 뒷편에서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늘 곁에서 그녀를 돌보는 유모 할멈이었다.
“아가씨. 소용없으니 이제 그만 들어가요. 달은 절대 내려오지 않아요.”
“그치만 유모. 나는 다른 선물은 다 필요없어. 저 달이 너무 갖고 싶단 말이야.”
“아가씨. 달은 장난감이 아니에요. 이렇게 달이 밝은 밤에야 너무나 크고 생생해서 당장 손에 닿을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무리 높은 나무에 올라가도 절대 손에 닿지 않는게 달이랍니다.”
“그럼 정말 정말 높은 곳에 올라가면? 이 나무가 다음 해 내 생일엔 좀 더 키가 커져서 달까지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유모는 억지를 부리는 타니야에게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 천사같은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고 말았다.
“그럼 이번 생일에는 저 나무가 달에 닿을만큼 자라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보자구요. 자! 그럼 얼른 자러 가야지 내일 소원도 빌 수 있겠죠? 갑시다 아가씨.”
유모는 타니야의 손을 꼭 잡고 왔던 그 길로 다시 사라졌다.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던 산제이는 손안에 꼭 쥐고 있던 소녀상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역시 이런걸로는 어림도 없어. 저 달! 내가 저 달을 가져다 주면 타니야가 얼마나 기뻐할까?’
다음 날 산제이는 혹시나 밤 사이에 누군가가 달을 먼저 따가진 않았을지 초조해졌다. 그래서 잔치가 시작되자 마자 부리나케 타니야의 집으로 달려갔다.
한참동안 이어진 축하연이 끝나고 모두가 둘러앉아 준비된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준비한 선물을 타니야에게 전달하는 순서가 되었다.
언제나처럼 부유한 행상들의 자제들만이 앞에 나서 보기 드문 진귀한 것들을 타니야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그 때, 멀리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잔치를 위해 펼쳐둔 천막 입구쪽에서 온통 흙투성이가 된 소년이 절뚝거리며 타니야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지껏 한번도 보지 못한 큼직하고 아름다운 하얀 꽃송이가 들려있었다.
마을의 누구도 여지껏 그렇게 활짝 핀 큰 꽃을 본 적이 없었기에
하나같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 꽃을 건네받은 타니야의 아름다운 미소라니.
산제이와 같은 노동자 집안인 마하야는 그 꽃을 구하기 위해 한참을 고생했을 것이 분명했다. 지저분한 행색 때문에 꽃을 건네자 마자 자리에서 밀려나야 했지만 그 발걸음 만큼은 누구보다 위풍당당했다.
산제이는 마음이 씁쓸했지만 금새 기운을 차렸다. 그래도 누구도 달을 가져오진 못했다. 자신이 달을 가져온다면 타니야를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산제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산제이는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의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나도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내가 잘 배우면 누구보다 높고 튼튼하게 탑을 쌓을 수 있을까요?”
산제이의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소꿉장난 하듯 흙을 가지고 놀다 말거라 생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매일 매일 산제이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아버지의 작업장에 달려갔다.
그리고 어른들 틈에서 열심히 흙을 조물거리며 벽돌을 만들려 애쓰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작은 손으로도 어른들 못지 않게 튼튼한 벽돌을 만들 수 있게 된 산제이는 낮에는 삼촌의 일을 돕고 해가 지고 나면 외따로 떨어진 자신만의 비밀의 장소로 가서 한 칸씩 벽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니야의 15살 생일이 되는 날이었다. 산제이도 이 날 만큼은 일을 멈추고 생일축하연을 보러갔다.
매년, 누군가 자신보다 먼저 달을 타니야에게 선물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잔치를 지켜보게 된지도 오래였다.
타니야의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웅성대면서 낙타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그 선두를 지휘하는 건 몇 년 전 행상들을 따라 먼 나라로 떠났던 미하야였다. 말끔한 차림새로 낙타에 올라탄 그는 뒤따른 낙타마다 등 위에 보석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상자를 매단 채, 타니야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산제이는 혹시 그 상자안에 달이 들어있는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그 뒤를 따라갔다.
마을 사람 모두가 몰라보게 달라진 미하야를 반기며 그가 상자를 열때마다 그 안의 가득찬 진귀한 보물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타니야 역시 그만한 양의 보물들은 처음인지라 어쩔줄 몰라하며 미하야를 올려다 보았다.
붉게 뺨을 물들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산제이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 어떤 금은보화도 달처럼 환하게 빛나지 않는다는 걸 되새기며 내일부터는 탑 쌓기를 시작하겠노라 다짐했다.
탑을 높게 쌓는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한것보다 쉽지 않은 일임을 인정하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높게 쌓는데에만 치중하면 안정감이 없어 일정 높이 이상은 쌓기가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이대로면 달에 닿기도 전에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산제이는 도시로 나가 훨씬 규모가 큰 건물을 튼튼하게 쌓을 수 있는 장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멀리 떨어진 왕국에서 궁궐을 지었다는 건축가를 어렵게 찾아간 산제이는 그에게 건물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원리를 배웠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높이 탑을 세울 수 있다는 자신이 들자 바로 마을로 돌아왔다.
떠나있는 사이에 혹시나 미하야가 먼저 달을 따서 타니야의 마음을 가지진 않을지 너무나 걱정되었지만 마을에 돌아와 보니 미하야는 타니야의 배필이 되기에는 그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구혼조차 하지 못한채 마을을 떠났다는 소문이 들렸다.
이제는 완숙한 여인이 된 타니야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 미모는 저 멀리 왕국까지도 널리 알려져 하루가 멀다하고 구혼자들이 그녀를 찾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도 보고싶어하지 않으며 선물조차 돌려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 많은 구혼자 중에 누군가가 달을 들고 오면 어쩌나, 산제이는 처음 탑을 쌓기 시작한 이후로 조급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이 탑을 쌓아도 달은 여전히 저 멀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하야가 마을로 돌아왔다.
산제이는 자신이 쌓은 탑 꼭대기로 올라갔다. 저 멀리 결혼식을 끝내고 제국으로 향하는 타니야와 마하야의 행렬이 보였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장군이 된 미하야인만큼 그 행렬 또한 위풍당당하기 그지 없었다.
산제이의 탑은 그들을 지켜보기 딱 알맞을 만큼만 높았다.
어스름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하늘위로 만월이 떠올랐다. 달은 여전히 저 멀리 있었다.
산제이는 미하야를 몰래 훔쳐보았던 그 달밤 이후, 쭉 자신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소녀상을 꺼내보았다.
그 날 밤 용기내어 이 선물을 전해줬더라면,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사무치는 회한의 감정이 조금은 덜어졌을까.
그날 이후로 산제이는 탑을 쌓는것을 멈췄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 사이에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아름다운 탑에 대한 소문을 돌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놓인 그 건물이 너무나 아름다워 일부러 그것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행렬로 인해 그 주변에 새로운 상권이 생길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토록 장엄한 탑을 단 한 사람의 손길만으로 완성된 것이기에 더욱 큰 경외심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막에서도 가장 부유한 한 나라에도 그 탑의 이야기는 전해졌고 그 나라의 재무대신과 그 부인에게도 소식이 전해졌다.
“여보, 그 탑이 있는 곳이 우리가 나고 자란 마을 근처인 것 같아요. 마을을 떠나 가족을 못본지도 너무나 오래되었는데 그 탑도 구경할 겸 같이 가보는건 어떨까요?”
대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부인을 너무도 사랑하깅 한시도 그녀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쌓여있는 나랏일을 제쳐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고향을 방문하고픈 그녀를 말릴 수도 없었기에 단단히 무장을 한 호위병들과 그녀의 안락함을 책임질 수레와 풍족한 식량을 직접 챙기며 한치의 부족함 없이 여행을 준비했다.
여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길었다. 하지만 고된 여정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사막과 가족들에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그렇게 이틀을 내리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행이 계속 되던 중 모래바람으로 희미하게 보이던 지평선 저 끝에서 어떤 형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체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그 탑의 크기가 얼마나 크고 엄청난 높이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주변에는 탑을 보기위해 몰려온 사람들과 장사꾼들의 움막으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마차가 마침내 탑 가까이에 도착한 것은 사막의 모래를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이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 그 얼굴을 감추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수레에서 내린 부인은 그 압도적인 높이와 장엄한 구조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탑의 정면에 위치한 계단으로 향하려던 부인의 눈에 탑의 반대편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는것이 보였다.
"왜 사람들은 탑에 오르지 않고 그 뒷편에 있는거지?"
화려한 부인의 수레를 보고 그 뒤를 따라다니던 잡상인들 중 한 노파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고귀한 부인. 이 탑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저 뒷편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랍니다."
부인은 모래바람을 가르고 직접 탑의 뒷편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노을로 붉게 물든 탑의 뒷편에서 그 형상을 발견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소녀. 마치 천사의 얼굴을 한 듯한 아름다운 소녀가 하늘을 날아올라 달을 꼭 껴안고 미소짓고 있고 별들이 마치 수호요정처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듯한 그 생생한 부조는 거대한 탑의 2층 정도 높이에 걸쳐 거대하게, 하지만 너무나 섬세한 자태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 소녀의 얼굴이 너무나도 낯이 익다는 점이었다.
그 때였다. 탑 바로 옆의 오래되고 허름해보이는 움막에서 한 노인이 나타난 것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통해 그가 이 탑을 만든 장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사막의 태양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온 탓일까. 까맣고 쭈글쭈글한 피부를 하고 있어 연로한 노인이겠거니 생각했으나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음걸이는 건장했으며 꼿꼿이 선 체구도 가까이서 보니 제법 탄탄해보여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노인은 한참을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부인. 혹시 탑을 보러 오신건가요?”
부인은 경외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답했다.
“네. 제 고향 근처에 너무나 아름다운 탑이 있다기에 정말 오랜만에 이 곳을 찾았지요.”
“이 탑은 제가 직접 벽돌 한 장, 한 장을 만들어 쌓았답니다. 그리고 저 조각은 제가만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를 조각한 것이랍니다. 제 유년시절과 청춘을 모두 다 바쳤지요. 부인이 보시기에 어떠신지요?”
“감사하게도 저는 살아 평생 이 세상에 온갖 귀한 보물들을 이 두 눈에 담아 볼 기회가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보물도 이렇게 눈물이 고일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답니다. 혼자서 이 모든 일을 해내시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의 두 눈에 일순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가 싶더니 재빨리 두 손으로 얼굴을 부볐다. 그리고 거친 나무조각처럼 보이는 검지를 들어 뉘엿뉘엿 지고 있는 하늘을 가르켰다.
“그렇다면 부인. 지금 막 하늘에 뜬 저 달과 비한다면 어떤가요? 비록 초저녁의 그문 달이긴 하지만, 부인이 본 가장 아름다운 달을 떠올려주세요.”
부인은 진심을 가득 담은 미소를 만면에 띄고 그 옛날처럼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또박또박 대답해주었다.
“제가 세상에서 본 그 어떤 아름다운 만월의 달도 이 탑의 아름다움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이 탑은 그야말로 예술작품입니다. 이렇게 멀리 있어 자주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얼굴을 감싸쥐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부인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따스한 손길로 그 노인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사막에서 외로이 고된 노동을 해온 것일까? 그 고독함이 어떤 것일지 부인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노인은 부인의 손길에 몸을 움찔하더니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자신의 품을 뒤졌다.
“부인, 제가 비록 이 탑을 부인이 계신 곳으로 옮겨드리진 못하지만 가끔씩 이것을 꺼내어 보며 이 탑을 기억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주 작은 소녀상이었다. 손때로 인해 반질거리고 모서리가 닳아 있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벽에 새겨진 소녀를 조각한 것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것 또한 너무나 아름다운 조각이네요. 소중한 물건인데 제가 받아도 될런지요?”
노인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이것은 원래 부인의 것입니다. 이것을 제때에 부인에게 전해주지 못한 것이 제 인생 최대의 실수였지만 이제는 모든 게 다 괜찮습니다. 부인이 제게 해주신 말씀만으로 모든 것이 괜찮아졌습니다.”
부인은 노인의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고된 노동으로 인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거라 생각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소중히 여기고 종종 꺼내보며 저 탑과 당신을 생각하겠습니다.”
부인은 산제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고 산제이는 그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통해 아주 어린 시절, 멀리서 바라본 그녀의 미소 한번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젖어들었던 그 시절의 감정을 생생히 떠올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 새 떠오른 달이 그 하얗고 고운 빛을 그가 새긴 탑의 얼굴- 타니야의 얼굴- 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