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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율 Dec 13. 2023

1화 : 이번화까지만 슬플 거에요.

늦깎 대학 신입생의 영국 유학기












(제목 : 내 머리 속 평소 모습)





나는 겉으로는 매우 얌전하지만 머리 속에 항상 카니발이 열리고 있는 사람으로, 사람과 어울리거나 재미있는 일을 벌리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20대 중반까지는 나름 활발한 삶을 살았다.



(인싸는 아니고 그냥 이벤트와 인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 모든 장소들에서 사라졌는데,









팔에 생겼던 가벼운 피부병이 계속된 잘못된 치료로 얼굴과 온 몸으로 번지면서,  











점점 더 심해져 외출이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피부염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치료가 많았던 2000년대 초반.

마치 실험을 하듯 여러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근본적인 치료는 자극을 가하는 것을 참는것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 염증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다량의 스테로이드와 항생제를 먹게 되었다.



점점 늘어가는 약의 갯수, 정기적으로 맞는 주사는 일상이 되었고, 2년 후에는 약의 부작용까지 더해져 체중은 원래 체중에서 50kg 가까이 늘었다.











병은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로 퍼져 피부는 계속된 염증으로 종이처럼 얇아지고 점점 녹아내렸고, 피부 아래에서 수천마리의 벌레가 날뛰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 때문에 스테로이드나 진통제가 없이는 잠들 수도 없게 되었다.








울기라도 하면 얼굴에 열이 올라 진물이 나기 때문에 눈물도 사치였던 그 2년간은, 너무 아팠기 때문에 기억이 별로 없다.




(맛있는 귤도 드릴게요. 최근에 천혜향을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더라구요...!!!)

 





3년째가 되었을때야 드디어 몸이 피곤하거나 체온의 변화가 커서 피부에 자극이 가지 않는 이상, 피고름이 흐르고 고통에 울며 깨는 밤들이 없어졌다.













표면이 죽어버린 내 피부는 돌같이 거칠고 딱딱했고 계속해서 늘어난 체중은 어느새 100kg 이 넘었지만, 의외로 이때 나는 여전히 삶이 즐거웠다.








이전 2년 동안만큼 아프지도 않았고 약이나 주사를 맞아야 하는 횟수도 줄었으며 점점 회복되어 가는 몸의 변화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며 놀거나 매일 메신저로 수다를 떨어서 외롭지도 않았고,





워낙 나르시스트에 천성이 오만한 사람인지라, 어느덧 정신 차리고 보니 3배가 된 내 모습도 귀여운 면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가난도, 고난도,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

언젠가 이런 상황을 작품으로 만들 때 직접 겪어본만큼

이 고통을 더 깊이, 더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던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나의 상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던 지, 그들은 항상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점점 그들에게 나는 모두에게서 숨겨야 할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갔다.










거울 속에서 보는 나는

나에게는 여전히 멋지지만 밖의 세상에서는 더이상 그렇지 못하대.

나는 다른 사람의 눈에 부끄럽고 불쌍하며 불행한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나는 망가진 사람이라

이제 밖에서는 일을 얻을 수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어.











그렇게 악의 없이 상냥하고 선한 의도로 그분들이 반복했던 잘못된 말들은 세상과 격리 상태였던 나에게 어느새 정론으로 박혀버렸고, 







 





나는 병의 상태가 나아져 감에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2년을 더 보내고 그렇게 방 안에서 30살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날, 대학 동기로부터 연락이 왔다.










K 교수님.

그 분은 의상학과 시절, 전공 수업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에게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찾아주시며 끊임없이 용기를 주시던 은사님이셨다.










졸업식도 치르지 않고 사라져 연락도 드리지 못하고 5년이 훌쩍 넘었는데 기억해 주셨다니..






당장 찾아뵙고 안부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나는 나갈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현관문 밖으로 단 오십 보,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그 시간도 무서워서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까지 창문 앞을 서성이다 나가거나,

 비가 와서 우산으로 나를 조금이라도 가릴 수 있는 날이 아니면 외출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교수님께 감사와 안부를 묻고 싶었기에.. 용기 내어 메일을 쓰기 시작했는데, 한참 글을 쓰다가 나는 울고 말았다.









넘치는 감정으로 적어내린 편지 속에서,


교수님, 저는 사실 아직 포기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창작을 하고, 작품을 만들며 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내 자신의 진심을 발견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큼 얼마나 울었던지.


근 몇 년간 그렇게 큰 소리를 내본 것도 처음인 것 같다.





그래.


나는 사실은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나는 아직도 내가 망가지지 않았다고 믿고 있어.

나는 내가 불쌍하고 불행하며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숨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싶어.







두서 없고 뜬금 없던 그 메일에 K 교수님은 5년 전과 같이 여전히 다정하게 답을 해주셨다.




포기하지 말고 끈기 있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무언가를 하고 있더라.

네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어딘가에 지원한다면 추천서를 써줄게.

너의 행운을 빈다.






그리고 그 조언대로 30살이 끝나가는 겨울,  집에 틀어박힌 지 곧 6년이 되던 그 날

나는 더이상 포기하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갈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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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연재하던 내용인데, 에세이툰으로 다시 만들어보았습니다. :-)

근데 4회까지는 안 재밌을것 같아 걱정이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많이 들었던 음악을 하나 추천합니다.

Steve Barakatt 의 Dreamers 라는 곡인데,

2006년에 서울에 와서 연주한 라이브 버전이 특히 좋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R4mKHc9h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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