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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율 Dec 19. 2023

3화 : 망설이며 보고만 있으면 날아가 버리는.

늦깎이 대학 신입생의 영국 유학기






나는 의상디자인을 전공 했지만, 비실기 전형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미술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






작법서를 보며 열심히 예시 그림을 따라해도 내 그림은 항상 어딘가 억지로 우겨넣은 퍼즐 조각 같이 완성도가 떨어진다 느껴졌는데,







그때는 그 모든 이유가

“내가 기초가 없어서!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래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에요.

모든 그림은 "이 그림은 여기서 완성이다!"라는 완성점이 있는데, (러프한 스타일 그림이던, 섬세한 그림이던) 그것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1. 그리다가, 이쯤하면 해당 그림의  주제와 의도에 맞는 그림이 되었다고 느껴지는 순간.

   = 작가의 개인적인 취향이 큰 결정권을 가짐

   = 작가의 고유 스타일이 생성되는 부분


2. 색, 구도 등 심미적으로 맞아떨어지는 발렌스 점.





그런데 그때의 나는 무조건 섬세한 수작업이 완성도 높은 그림이다! 라고 생각했기에,

주제와 상관없이 모두 섬세한 사진 같은 그림처럼 그리려고 했다.

-> 그런데 완성점도 틀린 데다, 기술도 따라가지 못하니까

-> 미완성 그림만 쌓임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주제에 포커스를 맞추어 스타일이나 방식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하게 창작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 대학교가 정해진 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헛짓만 하며 2달을 낭비하고 좌절하고 있던 3월 말, 








유학 정보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영국 유학박람회 광고를 보고부터 였다.









혼자 준비하던 포트폴리오가 망했으니 가서 조언을 꼭 들어야겠지?

하루만, 딱 하루만 용기를 내어볼까?

























외출에 대한 부담감을 이겨낼 만큼 급박한 스케줄에 더 고민 없이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하루동안 2달 간 제자리상태였던 미완성 그림들을 내려놓고,


+ 깔짝깔짝 마무리해 본 수작업인 듯 디지털 작업인 듯 한 새로 그린 그림 4장

+ 이전에 그렸던 디지털 일러스트들을 최대한 보정

+ 이제까지 웹툰 일을 하면서 작업한 것들을 간추린 내용

+ 자기소개서

+ 경력

= 모아서 정리하여 포트폴리오 포맷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의 서류들을 준비한 후,


+ 학교 졸업 서류

+ 구청의 인적 서류


오전에 인쇄소에 서류를 넘기고, 몇 년 만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고, 오후에 인쇄물을 찾아오고, 작품들의 작업 과정과 스케치를 담은 스크랩북을 완성했다.

*영국 예술 부문 포트폴리오는 이것이 필수 항목이었다.



모든 것을 최대한 준비한 후,  해가 뜨자마자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그러고보니 이게 대체  몇 달만의 외출이지? 익숙하지 않은 도시의 소음이  이틀 밤을 세워 더 민감해진 내 귓가에서 크게 울려, 머리가 아파왔다.













몇 벌 없는 외출복의 낡은 소매 끝에 난 구멍을 가리려고 그 소매를 말아 쥐고 걷는 내 모습이 깔끔한 양복을 입고 스쳐 가는 사람들 속에서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져 멀미가 나고,


사람들 사이를 걸을 수록, 나를 주목하지 않는 다는 걸 알아도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비난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서, 울고 싶을 만큼 모든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지금 뒤로 돌아 도망갈까를 수십번 고민하며 앞 사람의 발 뒷 꿈치만 보고 걷던







바로 그 때,









방금 땅에 내디딘 발 위에 뭉근한 무게가 실려서 내려보니 놀랍게도 그건 작은 아기새!


이게 무슨 동화 같은 헤프닝이야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신발 위로도 전해오는 보드라움과 작은 생명의 따뜻한 체온에 긴장이 탁 풀려버려서 웃음이 나왔다.


지금 도망가면 재미없을 거라는 듯 자신의 무게로 내 발을 누르고 조금 뻔뻔스러울 정도로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라니.





아기새는 다행히 다친 건 아니었는지, 안전한 곳에 놓아주자 종종종 뛰며 이내 사라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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