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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Feb 20. 2021

당신의 역량은 어디까지입니까

영국 드라마 <셜록>을 보다가 흥미로운 표현을 발견했다.

- out of one's depth

내 키보다 물이 더 깊다는 뜻에서 우리말로 하면 '감당할 수 없는, 역량이 못 미치는' 이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이야, 누가 만들었는지 진짜 찰떡같이 잘 만들었다. 낄낄거리며 나중에 한번 써먹어야지 생각했더랬다.


그렇게 빨리 실전에서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여러 개의 프로젝트가 들어오는 바람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부족하지, 심지어 영문이지, 필요한 자료는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지.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어째서 일은 해도 해도 안 느는 것 같을까. 직장인 짬밥을 이 정도로 먹었으면 멋들어지게 처리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업무 보고를 하며 보스에게 하소연을 했다.


"최근에 새로 배운 표현이 있는데요. Out of my depth - 제가 지금 딱 그 느낌이에요."

"흠, 그럴 때 내가 해 주는 말이 있는데."

"뭔데요?"

"더 깊이 파 내려가 봐. 그러다 보면 뭔가를 발견하게 되거든. 그게 뭐든 말이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별 것 아닌 일에 잘 감동받고, 벅차오르는 느낌과 통찰의 순간을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안되면 되게 하라'를 살짝 바꾼 것뿐인데 감탄하고 말았다. 일 뿐만이 아니다. 스스로 한계를 설정해두고 이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버티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건 정말 나의 최선일까. 


상상했다. 물속에서 까치발을 한 채 숨만 겨우 쉬고 있는 내 모습. 무리라고, 이제 더 들어갈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정말? 더 못 들어가는 게 맞나?


숨을 힘껏 참고 잠수를 해 볼 것이다. 바닥까지 완전히 내려와 앉아 땅을 두드려 볼 것이다. 발끝으로 더듬었을 때는 바위 같았던 바닥이 어쩌면 그냥 단단히 굳어진 흙일지도 모른다. 잘하면 팔 수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정말 바위면 또 어떤가. 주변 다른 곳에 흙바닥이 있을 수도 있다. 좀 더 찾아보려고 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말하는 건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으니까.



Fin.


(*사진 출처: Pete Linforth,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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