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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Feb 28. 2021

정신과가 아직 두려운 당신에게

지난 여름에 좀 앓았다. 마음에 난 생채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서 위태위태하게 한 계절을 보냈다. 괜찮다 싶은 날과 주저앉고 싶은 날의 반복이었다. 인간은 왜 이렇게 약한 걸까. 나는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누워있고만 싶었고, 울고 싶었다.


사람 잃은 걸로는 모자라서 자존감도 잃었다. 내 안에 연결되어 있는 정체성, 인간관계, 사랑, 믿음에까지 문제가 생겼다. 내가 비정상적인 사람이라 이 관계를 망쳤고, 내가 나라서 앞으로도 불행할 것이라는 극단적 결론으로 치달았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고 눈을 떴는데 갑자기 죽어버리고 싶었다. 이제 정말 한계였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전화하는 병원마다 앞으로 몇 달은 예약이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겨우 한 병원을 찾아냈고, 약간의 상담과 약물 처방을 받았다. 처음에는 나를 탓했었는데, 나중에는 나만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종결 즈음에는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날, 의사와 간호사가 해 준 말들이 마음에 남았다. 다시 만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살다 보면 여기 올 일이 분명 생길 거라고 했다. 혼자 너무 오래 힘들어하지 말고 뭔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오라고, 편하게 와서 털어버리고 가라고 했다.


모진 밤을 홀로 견디며 망설이고 있는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몸이 아플 때 그에 맞는 병원을 찾듯이 마음이 아플 때 역시 도움을 받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공공연히 떠들 일도 아니지만 부끄러워 감출 일도 아니라고. 그저 내가 잘 살 수 있게 스스로를 보살펴주기 위한 일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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