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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루씨 Oct 10. 2021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철학자들이 알려준 늙어감에 대하

[그래도,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철학자들이 알려준 늙어감에 대하여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저, 김하현 역, 어크로스, 2021 




작년부터 독서 모임에 참여 중이다. 우리는 정해진 방식 없이 책을 읽고 그것을 공유한다. 취향의 결이 비슷해서인지 다른 사람이 공유한 책들은 도미노를 타듯이 서로서로 읽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바로 이 책이 도미노 물결을 일으켰다. 김영하 작가님의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어 유명해진 이 책은 철학책으로는 처음으로 베스트셀러에 들었다고 들었다. 김영하 작가님의 북클럽 도서라면 믿고 보는 터라 바로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철학을 주제로 한다니 더욱 마음이 끌렸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새벽, 2부 정오, 3부 황혼. 우리네 인생을 하루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부마다 여러 명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저자는 각 철학자의 발자취를 따라 철학자가 살던 곳, 머물던 곳을 기차를 타고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과 철학자들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기차 덕후이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찾아가며, 책 이름에도 ‘익스프레스'를 넣었다. 철학과 기차여행이라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책에 나오는 철학자는 총 14명이다. 소크라테스, 니체처럼 유명한 철학자부터 시몬 베유나 세이 쇼나곤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도 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보부아르였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녀의 철학을 잘 알지는 못했는데, 이 책을 보고 그녀의 저서를 찾아서 보고 싶어졌다. 보부아르를 다룬 챕터는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이었다. 내년이면 마흔을 앞둔 나에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 수 있을까?'이다.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보부아르는 실존주의자였다. 실존주의자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다룬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더 진정성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가 그들이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답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답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도 했다. 보부아르는 늙어가는 것이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 사회적 판결이라고 결론 내렸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우리네 문화는 나이 들어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기피하고 또한 무지하다.




최근에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바로 '챠오 아미치'로 유명한 '밀라논나' 할머니와 45살에도 빛나는 몸매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빅씨스' 밀라논나 할머니는 한국인 최초 밀라노 패션 유학생이다. 패션업계에서 일하셔서 그런지 옷 입는 센스도 남다르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할머니의 조곤조곤한 말을 듣고 있으면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노화가 하나도 두렵지 않다. 빅씨스는 최근에 알게 된 유튜버인데, 유튜브의 주제는 홈트이다. 처음에는 30대 초반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45살이었다. 맙소사. 군살 하나 없는 아름다운 몸매와 부자들만이 가진 여유로움이 넘치는 분이다. 닮고 싶은 분이라 매일 저녁 빅씨스 언니와 운동하고 있다.


작년에 우연히 만난 책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에서도 멋진 할머니를 만났다. 일본에 사는 마짱 할머니는 80살이 넘는 나이게 앱을 개발하고 출시한 대단한 할머니이다. 집에만 있는 게 심심해서 시작한 앱 개발은 할머니를 앱 개발자로 만들었고, 앱을 출시하였다. 최고령 앱 개발자로 애플에도 초청된 적이 있다. 할머니는 나이 들수록 연륜이 많아지고 하고 싶은 게 많아져 즐겁다고 했다. 쓸쓸히 늙어가는 우리 주변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저자인 에릭 와이너도 노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머리가 점점 벗겨지고 있는데 왜 그걸 밀지 않냐고 딸 소냐에게 한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그 대화 과정이 너무 철학적이라 과연 철학책을 쓰는 사람답다는 생각을 했다. 에릭 와이너는 보부아르의 책을 읽고 자기 나름의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에 대해서 책에 서술하고 있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적어두고 한참을 지켜보았다. 그 목록을 아래와 같다.


1. 과거를 받아들일 것

2. 친구를 사귈 것

3.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4. 호기심을 잃지 말 것. 소로도 말했다.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만큼 늙은 사람은 없다."

5.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6. 습관의 시인이 될 것

7. 아무것도 하지 말 것. 활동하는 시간이 있다면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즉,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푹 쉬라는 의미일 것이다.

8.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9.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삶을 놓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10.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적어놓고 보니 '밀라논나' 할머니, '빅씨스', 앱 개발자 마짱 할머니 모두 실천하는 방법인 것 같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그래, 나이 드는 것도 꽤 괜찮지 않아?'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요즘에 마흔은 젊은 축에 속하지만 스무 살에 내가 바라본 마흔은 그야말로 할머니가 되기 바로 전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보부아르의 말처럼 늙음이라는 건 문화적, 사회적 판결이라는 것을. 조금은 슬프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만이 문화적, 사회적 판결에 대한 통쾌한 복수라는 것을.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노화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한다. 젊음을 유지하는 것만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나이 듦의 문화가 없다.(440p)" 우리 세대부터 나이 듦의 문화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죽을 때도 매장 문화가 있다면 아들에게 묘비에 이렇게 써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이번 생은 옳았다"


그리고 니체의 말을 빌려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번




소냐에게

모든 것을, 특히 너 자신의 질문을 물으렴. 경이로워하며 세상을 바라보렴. 경건한 마음으로 세상과 대화하렴. 사랑을 담아 귀를 기울이렴. 절대로 배움을 멈추지 말렴. 모든 것을 하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렴. 네가 원하는 모든 높이의 다리를 건너렴. 네가 가진 시시포스의 돌덩이를 저주하지 말렴. 받아들이렴. 사랑하렴. 아, 맥도날드는 좀 줄이려무나.

싫음 말고. 그건 너의 선택이니까.

(4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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