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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루씨 Oct 09. 2021

『어린이라는 세계』어린이를 위한 세상을 꿈꾸며

[그래도, 책]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어린이를 위한 세상을 꿈꾸며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저, 사계절, 2020




얼마 전 퇴사 선물로 책을 받았다. 평소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나를 눈여겨본 친한 동생의 선물이었다. 회사 마지막 출근 날, 동생은 조용히 나를 불러 선물을 건넸다. 책장을 넘기자 첫 페이지에 동생이 정성 들여 쓴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회사 짐 정리를 마치고 동생과 회사를 나와 지하철역에서 헤어지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책의 첫 장을 넘겨 편지부터 읽었다. 편지에는 같은 팀, 같은 파트에서 2년 넘게 함께 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동생은 항상 고민을 들어주고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자신을 동등한 입장으로 대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였다. 그동안 동생과 함께 한 시간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동생 덕분에 회사의 좋은 기억만 가지고 마지막 퇴근을 할 수 있었다.


그 책은 바로 <어린이라는 세계>였다. 출판할 때부터 읽고 싶었지만, 쉽사리 읽지 못했던 책이라 반가웠다. 마지막 퇴근길에 읽기 시작한 책은 여름휴가 동안 나와 함께 해주었다. 휴가 동안 틈틈이 책을 읽었고, 책을 읽는 내내 동생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책은 어린이 독서 교실을 운영하는 김소영 님이 쓰신 에세이다. 독서 교실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겪은 이야기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어린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관한 생각이 담겨 있다. 아이들의 기상천외한 생각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내 아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부분에는 맞장구치며 웃다가,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부분이었다. 그 이유가 무척이나 재미있다. 독서 교실을 유료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엄연한 고객이고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린이를 그 자체로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다. 책 안에도 그런 저자의 마음이 곳곳에 묻어나 있다. 특히,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겨울 외투를 벗는 아이의 뒤에서 시중드는 모습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어색하고 쑥스러워하는 아이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이렇게 하는 건 네가 언젠가 좋은 곳에 갔을 때 자연스럽게 이런 대접을 받았으면 해서야." 아이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면 아이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아이로 자라고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이 받은 만큼 대접할 것이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 또 하나. 저자가 지방 소도시로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서점에 들르게 되었는데, 서점에 6살 정도로 보이는 딸과 아빠가 있었다고 한다. 딸이 책을 고르고 계산대에서 자기가 계산하고 싶어 하자, 서점 사장님은 어린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따로 계산해 드릴까요?"라고 정중하게 묻고, "따로 담아 드릴까요?" 라 물었다고 한다. 어린이라고 다짜고짜 반말하지도 않고, 귀여움에 감탄해 끝을 올리는 말투도 아니었다. 그저 어른과 동일하게, 다른 어른 손님과 똑같이 정중하게 대하고 정중하게 물어봤다. 문득 놀이터나 놀이공원에서 만나는 어린이에게 반말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을 듣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그렇듯이.




'어린이'는 '어린아이'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나이가 적다'라는 의미의 '어린'과 의존명사 '이'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의존명사 '이'는 '젊은이', '늙은이'와 같이 부르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의미가 있다. 즉, 어린이는 '나이가 어린 분'이라는 말이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만든 단어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 전부터 쓰였다고 한다. 방정환 선생님이 주목한 건 '어린이'의 '이' 였다. 그전까지 어린이는 부모의 소유물 정도로 여겨졌다.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했다. 1919년에 창설한 소년회를 계기로 1922년에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고 지금의 어린이날이 되었다. 처음에 노동절을 어린이날로 지정한 건 노동자들이 해방되듯이 어린이도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어린이들이 선물을 받는 날로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만들어진 계기는 어린이의 인권을 위해서였다. 저자가 <어린이의 세계>로 이름을 지은 것도 어린이의 인권과 품위를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나도 저자처럼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놀이터에서 만나는 어린이들부터 존댓말을 써봐야겠다. 그렇게 존댓말을 쓰고 존중하다 보면 그 어린이들이 커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어른이 되겠지? 그렇게 세상이 조금씩 아름다워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물론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대해야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동생이 써준 편지를 한 번 더 읽었다. 동생은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책이라서 이 책을 골랐다고 했다. 아마도 동생은 저자가 어린이를 존중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 같다. 띠동갑을 넘어서는 나이 차이가 있지만 나는 항상 동생에게 존댓말을 썼고, 동생의 의견을 자주 물어봤다. 물론 동생의 고민도 잘 들어주었다. 나는 동생의 품위를 지켜주고 동생 또한 나의 품위를 지켜준 것이다. 이제서야 동생이 이 책을 선물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모든 어른에게 선물하고 싶다. 어린이는 어른을 보고 배우며 자란다. 꼭 아이를 가진 부모가 아니어도, 우리 도처에는 어린이가 있다. 길을 걷다 만나는 어린이, 식당에서 만나는 어린이, 공원에서 만나는 어린이가 모두 우리를 보고 있다. "어린이에게는 어른들이 환경이고 세계라는 사실을 그날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고 쓴 저자와 같이 <어린이라는 세계>의 배경에는 어른들이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곧, "어른들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가 어린이를 대하는 꼭 그만큼 어린이는 세계를 대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어른이 어린이의 품격과 인격을 생각하고 지켜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린이를 어른의 1/2 정도로 생각한다.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단계 있는 어린이.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라는 저자의 말처럼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매년 어린이날이면, 나라의 기둥이라느니, 미래라느니 라는 가혹한 말로 어린이의 현재를 거부하고 있지만, 어린이는 미래가 아닌 현재로 봐야 한다. 우리가 어린이를 1/2의 존재가 아닌 1의 존재로 대할 때 어린이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한 사람의 몫을 해낸다. "어린이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살아 있다" 오늘은 길을 가다가 만나는 어린이에게 반말이 아닌 존댓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존중받은 어린이의 존중이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어린이의 세계도 우리의 세계도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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