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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루씨 Oct 28. 2021

엄마의 출근 가방

[글모사] 가방


삐삐삐삐삐

현관문의 도어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다.


"할머니~"

아이가 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긴다. 

엄마는 아이를 안아주고 등에 짊어진 가방을 내려놓는다. 한 눈으로 봐도 무거워 보인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잠깐 안기고 가방을 뒤진다. 먹을 게 없는지 보는 거다. 아이가 연 엄마의 가방 안에는 음식과 재료가 가득하다. 월요일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주말에 한 음식이 가방 가득 채워져 있다. 무게를 가늠해보고자 들어봤다. 무겁다.


"엄마 집에 먹을 거 있는데 무겁게 왜 들고 와~"

엄마는 말없이 웃는다. 가방을 열어 음식을 하나둘 냉장고에 넣고 정리한다. 아이는 벌써 옆에서 뻥튀기 하나를 입에 물고 있다. 엄마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엄마는 평일 아침에 우리 집으로 출근한다. 

일하는 딸을 위해 손주를 봐주기 위해서이다. 엄마가 출근하며 나도 출근하고, 내가 퇴근하면 엄마도 퇴근한다. 엄마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5분. 버스를 타고 30분.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 집까지 10분. 모두 합쳐 45분. 엄마는 매일 45분을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우리 집으로 출근한다. 엄마의 출근 가방은 항상 음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안에는 아이의 아침과 나의 저녁이 들어있다. 최근에 코로나로 재택근무하는 날이 많아졌다. 내가 집에서 일하는 날이면 나의 아침과 점심도 들어간다. 이제 나이가 있으시니, 그만 들고 오셨으면 좋겠는데, 매일 이야기해도 매일 들고 오신다. 그런 엄마에게 미안해 주말마다 먹을 것을 사서 냉장고에 채워 넣지만, 엄마의 출근 가방은 항상 무겁다.


출근 가방 안에 든 음식은 매일 다르다. 

월요일에는 주말 동안 만드신 멸치육수와 목살, 콩나물무침, 시금치나물이 들어있다. 멸치육수는 국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국을 끓이기 위함이다. 목살, 콩나물무침, 시금치나물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다. 어떤 날은 내가 좋아하는 간장게장, 어떤 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조기가 들어 있다. 직접 만드신 음식이 아닌 재료가 들어 있을 때도 많다. 다진 마늘, 양파, 버섯, 새우, 낙지 등등. 그리고 가방 깊숙이 숨겨 가져오는 것도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막대 과자. 아이의 방에서 놀다가 아이에게 하나씩 주기도 한다. 


가끔은 쌀을 들고 오시기도 한다. 그것도 3kg. 너무 무거운 경우 아빠를 시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아빠도 엄마와 같이 무거운 출근 가방을 짊어지고 우리 집으로 출근한다. 아빠는 자유롭게 근무하여 출근 시간이 늘 다르지만, 엄마는 늘 같은 시간에 출근한다.


엄마가 가방에 넣어 오는 건 다름 아닌 자식과 손주에 대한 사랑이리라.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많지만, 

엄마는 음식을 택했다. 

당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전한다. 


오늘도 엄마는 우리 집으로 출근한다. 자식과 손주의 사랑을 듬뿍 담은 가방과 함께. 

사랑을 온종일 나누어주고 기분 좋게 퇴근한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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