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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루씨 Oct 27. 2021

여행과 삶의 경계는 어디인가

[글모사] 여행


대학교 때 나의 꿈은 일본에 사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후부터 일본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혼자 일본어를 배우고 이중 전공으로 일어일문학을 배우고 나서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일본에 몇 번 여행을 가봤지만 2박 3일, 4박 5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꿈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1년 가까이했을 때 찾아왔다. 

직장에 다니면서 워킹 홀리데이를 차근차근 준비했던 나는, 직장에 다닌 지 1년이 되었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향했다. 워킹 홀리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하면서 마음껏 놀다 오는 게 목표였다. 일할 곳을 찾는 게 난관이었는데, 다행히도 다니던 회사와 연계된 일본 회사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하여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다. 그렇게 나의 일본 생활은 시작되었다.


일본 생활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태어나서 스스로 나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도 처음이었고, 외국에 사는 것도 처음이었다. 모든 처음은 설렌다. 매일 설렘을 안고 잠에서 깨고 잠이 들었다. 일본에서 일본어를 쓰며 살아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 새로운 집, 새로운 회사, 새로운 풍경. 매일 새로운 것들이 내 눈에 가득 들어찼고, 새로움을 만끽하며 살아갔다.


일본에 온 지 6개월이 지났을 때쯤, 

내 눈에 쓰인 '여행'이라는 필터가 서서히 걷히고 생활 속에 '삶'이 들어왔다. 


매일 걷는 출퇴근길, 익숙해진 회사생활, 비슷한 음식들. 모든 것들이 서서히 지겨워졌고, 일상은 지루함으로 다가왔다. 삶을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들도 많았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집을 구하기 어려웠다. 일본은 전세가 없어서 매달 내가 번 돈의 일정 부분이 월세로 나갔다. 공과금을 매달 처리해야 했다. 밥을 혼자 차려 먹어야 했고, 매일 쌓여만 가는 집안일도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것도 많았다. 일본어 원서를 중고서점에서 사서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사시사철 바뀌는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살던 동네 주변에는 큰 공원이 있었는데, 주말마다 그곳으로 산책하러 나갈 때는 더없이 기뻤다. 그렇게 일본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면서 일본에서의 삶을 이어나갔다.


나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삶'을 만나고 왔다.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우리가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이 지루해서. 새로운 것을 찾고 싶어서. 리프레시를 위해 꿈꾸고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새로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된다. 자극도 계속되면 익숙해진다. 혹자는 여행이 좋은 이유가 돈을 마구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 짧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삶에서 신경 써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자가 만료되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매월 공과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매일 호텔의 방은 깨끗이 치워져 있고 매일 새로운 날들이 이어진다.


여행이 길어지면 삶이 되고, 삶이 짧아지면 여행이 된다. 

누구나 그 경계는 다르겠지만 나는 6개월이다.


오늘도 나는 꿈꾼다. 코로나가 끝나고 여행 가는 꿈을. 

그리고 다짐한다. 그 여행은 6개월 전에 끝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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