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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루씨 Oct 30. 2021

유모차와 휠체어

[글모사] 장애


아이를 출산한 후 유모차를 가지고 외출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와 외출하는 일은 즐겁지만, 유모차를 가지고 다니는 일은 즐겁지 않다. 

내가 유모차로 아이와 외출하면서 처음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우리 동네 길이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유모차를 가지고 나간 후에야 길이 얼마나 울퉁불퉁한지 알게 되었다. 길뿐만이 아니었다. 먼 거리에 있는 장소를 가려면 불편함이 배가 되었다. 우선 지하철을 타려면 엘리베이터부터 찾아야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찾은 후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지하철 탈 때는 또 어떻고. 탈 때마다 승차장과 지하철 사이의 텅 빈 곳은 아찔했다. 마치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까만 그 공간에 유모차 바퀴가 빠질까 노심초사했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나서도 또다시 엘리베이터 찾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원하는 장소에 도착하고 나면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나 있다. 아이는 놀자고 조르는데 나는 이미 땀에 흠뻑 젖어있다.


지난여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위해 전날 입원을 하고 저녁부터 금식했다. 다음 날 수술하기 전 몇 가지 검사를 하기 위해 5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입원한 병실은 12층이었다. 검사를 받는 도중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에게 이야기하고 검사실에서 앉아 있다가 겨우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받은 후에도 어지러운 것이 가시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배려하여 병원의 다른 직원에게 휠체어를 가지고 오라고 연락했다. 나는 병원 직원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병실까지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까지 도착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편함'이었다. 

병원의 모든 엘리베이터는 보이는 곳에 있었고, 바닥은 모두 매끄러웠다. 휠체어는 자신의 바퀴를 한껏 뽐내며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동네와 지하철 그리고 병원에서 누군가를 바퀴가 있는 물체에 태워 가거나, 누군가에게 태움을 당하여 갔다.


한 곳은 불편했고, 한 곳은 편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 동네는 유모차와 휠체어를 배려하여 만든 공간이 아니다. 아스팔트를 깔고 사람이 다닐 수 있으면 그만이다. 누가 그곳을 다니는지는 모르겠고 일단 다닐 수만 있으면 된다.


병원은 다르다. 아픈 사람들이 매일 드나드는 곳이고 생활하는 곳이다. 휠체어를 끄는 사람을 배려한 공간이다. 지하철은 그 중간쯤이려나. 하지만 지하철도 배려는 했다고 하지만 그 공간은 매우 불편하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는 말할 것도 없다. 버스는 유모차를 가지고 타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나는 이 두 공간을 이용하면서 처음으로 휠체어를 끄는 장애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잠깐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잠시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들은 어떠할까? 우리가 사는 모든 곳을 병원처럼 그들이 사용하기 좋은 공간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나에게 외출은 항상 즐거운 것이었지만 유모차를 끌고 나서는 불편한 것이 되었다. 아마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외출은 피하고 싶은 불편함일 것이다. 그들의 위치에 서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의 외출이 편해질 수 있도록.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휠체어를 끌고 마음 놓고 외출할 수 있도록. 

모두를 배려하는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들의 외출이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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