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나들이 과거 추억행

추억은 현재를 감사하게 하는 힘

by 루씨리Rhee

#추억 #가족 #감사 #마트 #나들이


아침 먹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회사에서 보고를 앞두고 있는 리포트가 막바지 한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만큼 진도가 안 나간다. 조급함이 앞서오는데, 파워포인트 채 한 장도 못 봤는데 벌써 내가 방에 들어온 지 2시간이나 훌쩍 지나있고, 이젠 점심시간이다. 아침 먹고 치운 지 얼마나 됐다고, 점심에 먹자고 꺼내둔 고기며 국수며 저걸 언제 다 준비 한담! 짜장면이나 시켜 먹을까? 아니야, 한창 크는 애들 그래도 영양가 있게 먹여야지. 짜장면 집 전화번호를 터치하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부엌으로 나가서 고기를 굽고, 비빔면을 비벼낸다. 식구들은 너무나 식사를 맛있게 하고, 우린 새해맞이 나들이를 계획한다.


고등학생들인 두 딸을 두고 있는 나는 항상 시간이 제일 적게 걸리는 곳으로 나들이를 잡는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마트로 나들이 장소를 잡았다. 누가 들으면 웃겠다. 나들이 장소로 대형마트라니. 대형마트 가는 것조차 내겐 나들이라고 여겨질 만큼 나는 집 밖을 무서워한다. 아, 보고를 앞두고 있는 리포트 스무 장 감수해야 하는데 겨우 1장 반 마치고 집 밖 외출이라니. 그리 달갑진 않지만, 아이들과 외출을 약속한 터라 남편의 차에 몸을 싣는다.


대형마트가 위치한 곳은 작은 애 낳고 금방 이사를 해서 약 3년간 살던 월계동과 가까운 곳이다. 마트까지 가는 길에 나는 편안한 자동차의 진동을 요람 삼아 잠이 들었고,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흡사 코스*코를 방불케 하는 트레이*스에서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삼*카드 아주머니가 4만 원을 캐시백 해준다며 카드를 발급받으라고 하신다. 다음번에 꼭 만들어야지. 하고 장을 본 물건들을 잔뜩 차에 싣는다. 마트 나들이는 그냥 평범했다. 이런 나들이조차도 재미있어하는 우리 애들에게 감사하기도 했다.


월계동으로의 방문은 그 동네를 떠난 지 12년 만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미취학일 때 살았던 동네에서의 3년이 영화필름 지나가듯 머릿속을 스친다. 무엇보다도 주말마다 항상 방문하던 대형 마트 장보기. 남편이 집을 비운 주말이면 그때는 내가 마트에 애들 카시트를 태워 직접 도로에 진출하기도 했다. (자동차 운전대만 잡으면 박는 나여서, 너무 무서워서 요즘엔 운전을 안 한다.)


나도 그때는 삼십 대 초반이었으니 훨씬 역동적이었다. 남편과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시댁과의 여행 문제로 옆집이 뛰어와서 현관문을 두드릴 때까지 밤새 소리 지르던 일. 퇴근길 다정하게 손잡고 들어가서 먹던 짜장면을 반도 다 못 먹고 나 먼저 울면서 집에 와 버린 그 기억. 출/퇴근 편도 1시간 30분씩 걸리는 거리를 새벽에 우는 애들 떼어놓고 출발해서, 거의 애들 잠들 때 돌아와 화장도 못 지우고 같이 잠들어버리던 그때. 새벽 졸린 시간에 지하철 입구에서 사 먹던 토스트. (항상 치즈와 햄 메뉴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아침 시간) 월급을 받으면 항상 참새 방앗간 지나듯 들리던 보새 옷 가게. 아장아장 걷는 두 딸들 데리고 다니던 슈퍼, 병원, 성당 골목골목 담겨있는 우리들의 발걸음들. 그리고 우리 애들을 봐주던 교회 집사님과 집사님의 아이들.


마트를 다녀오면 사 온 식재료 정리와 소분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그 식재료로 또 새로운 요리를 해야 하지 저녁도 먹을 테지. 아침에 진도 못 빼던 회사 일은 또 저녁에 하면 되니까. 오늘 못한 일은 내일로 미루라고 있는 거니까. 뜻하지 않게 월계동 마트 나들이로 10여 년 전 30대로 돌아가 그 시간들을 추억하자니, 오늘의 마트 나들이가 새삼 너무 감사하다. 쿠*의 인터넷 장보기로 거의 마트 장보기를 안하게 됀 요즘이다. 십이년전의 마트 장보기는 그냥 일상이었다. 과거의 일상을 떠올리게 해준 가족들과 추억은 현재 함께 하는 일상에 더욱 감사해하고 집중하라고 조용한 일깨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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