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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공상태 May 01. 2020

아쉬운 마음

넘겨짚다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은,

서울의 강북에서도 북쪽,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북동쪽 일까?

지하철 4호선 수유역과 쌍문역의 딱 중간을 가로지르는 우이천을 코앞에 둔 곳이다.


북한산이 멀지 않은 곳이라, 나는 시간이 될 때면 종종 집에서 도선사 道詵寺 라는 절까지 걸어갔다 오곤 한다.


집에서 도선사 까지는 왕복 10km 정도 되는 거리이고, 도선사는 백운대로 향하는 북한산의 등산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운동이 꽤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그만 내려가 볼까 하는 곳이, 사실은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인 것이다. 나의 체력이 탄로 나는 지점, 바로 도선사!)


오늘은 5월 1일, 출근하지 않는 날이다.

나는 우이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북한산우이역까지 갔다. 거기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도선사를 향한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입은 등산로의 평범한 풍경이다.

각종 등산용품점과 식당들의 분주함 때문인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풍경들을 지나치다 보면 어느새 고무가 깔린 조용한 길이 나오고, 눈앞에는 나무와 꽃들 만이 펼쳐지게 된다.


한참을 풍경에 취해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안녕하세요." 라는 평화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긴장을 했다.

왜냐하면, 수유역에 너무도 흔하게 있는 '도를 아십니까' 류의 접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처럼 바쁜 도시에서, 편안한 목소리의 인사말이란, 나에게는 어색할 뿐만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멈칫하다가, 재빠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분은 역시나 평화롭게 미소를 지으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가셨다.


'아, 나도 안녕하세요 라고, 제대로 인사드릴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아이슬란드에서, 산속에 있는 폭포를 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산을 오르면서, 산림관리원도 만나고, 나처럼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그때는 오히려 아무런 경계심 없이 편안하게 인사를 주고받았었는데, 나의 고향 서울에서는 산길에서 마주친 사람이 건네 오는 인사에 무의식적으로 경계태세를 갖추게 되다니.


중년의 아저씨여서 그랬을까?

아닌 것 같다.


수유역의 '도를 아십니까' 라며, 나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던 나이불문 남녀들이 내게 새겨 넣은 트라우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아쉬웠다.


나무는 푸르게 싱싱하고, 활짝 핀 꽃들은 그 내음이 너무도 향기로왔는데, 그런 곳에서 평화롭게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여유를 나는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쉬웠다.


나는 지하철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도와주는데, 그건 주변에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느끼는 안심 혹은 안도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는.. 한국의 산에서는,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깨달았다.


지난번에, 산에서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등산용품 챙기는 걸 도와드린 적이 있었는데, 몸이 불편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안심을 했던 건가 보다.


사지가 멀쩡하고 건강한 사람을 산에서 만난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고 내가 혼자일 경우, 그 사람이 인사를 건네 올 때, 나는 긴장을 하는구나.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좋은 분이셨는데.. 나는 그분을 넘겨짚었고, 편안한 인사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만에 있을 때, 산에 갔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었는데..


별거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는 일이라는 거 잘 알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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