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수업 후기 (23)

by 홍보경
진정한 문제는, 어떤 측면에서는 모두가 현재의 지각을 닮고 있는 무한한 기억들 중에서 어떻게 선택이 이루어지는지, 왜 그것들 중의 하나만이-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의식의 빛으로 나타나는지를 아는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세계(우주)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세계는 어떻게 구성될까? 그동안 나를 거쳐갔던 수많은 인연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사람, 사물, 사회적 위치, 적을 두었던 조직 혹은 공동체, 취미 등... 베르그손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것들의 총체가 나의 몸들이 행동하여 현실 세계에서 물질로서 실제화시켰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역 원뿔 도식'에서 설명하자면 '꼭짓점 S'들이 무수히 찍혀 만들어진 '우주적 평면'이 한 사람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각자가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지는 이유는 끌리는 대상 'X'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의 삶에서 마주쳐왔던 것들을 떠올려 본다. 기억의 한축을 구성하고 있는만큼 한때 나를 구성했던 그리고 현재에도 구성하고 있는 많은 항들. 끌렸던 대상을 '남자'에 한정한다면 나는 '착한 남자' 보다는 '나쁜 남자'에 끌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나만이 가지는 경향은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나쁜 남자'의 정의와 특징은 다르겠지만 많은 여자들이 그녀들만의 '나쁜 남자'에 끌리곤 한다. '나쁜 남자'에 끌리는 여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와의 연애를 통해 기쁜 삶보다는 슬프고 불행한 삶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첫 남자친구 H 를 만났다. 그는 '나쁜 남자'였다. 새내기 여학생들이 새로 입학할 때마다 접근하여 꼬셔서 적당히 데리고 놀다가 새로운 여자친구로 갈아치운다고 소문이 난 선배였다. 그는 잘생기거나 키가 크거나 몸이 좋지는 않았지만 시크한 표정과 양복이 잘 어울리던 사람이었다. 여자들을 대하기 어려워 한다거나 친절하고 다정하기보다는 쿨하고 무심하게 대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무례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말과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여자친구들은 그 선배를 싫어하기도 했다.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 여학생들을 속여서 속된 말로 '따먹는다'고 알려진, 한마디로 평판이 안좋은 사람이었다. 많은 여자를 만나보아서 그랬을까. 그는 처음 연애를 해보는 나의 애간장을 태우곤 했다. 그가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놀아날 수밖에 없는 마음이었다. 그와의 관계는 그가 나에 대해 급속도로 흥미를 잃으며 불과 반년도 안되어 끝나버렸다. 사랑은 커녕 연애라고 할 수도 없는 관계였지만 '나쁜 남자'에 끌렸던 나의 연애사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도 서너명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 중 유독 나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던 친구 T 가 있었다. 그 친구는 '좋은 남자'였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에게 헌신했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과 나에게 소중했던 친구들도 아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며 그와 결혼하라는 말을 하곤 했다.


T는 나보다 눈물도 많고 정도 많았다. 사람들과 웃고 유쾌하게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기 바로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나의 욕망을 존중해 주기보다는 나를 자신의 입맛대로 맞추기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와 정반대의 남자를 만나고 싶었던 마음 때문에 그의 따뜻함과 밝음 그리고 다정함에 끌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그의 행동과 헌신이 부담스러워졌다. 그에 대한 마음에서 점차 부채감과 의무감이 커져간다고 느껴졌을즈음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나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헌신하여 사랑해주는 '좋은 남자'에게는 끌리지 않는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내가 끌렸던 다른 남자들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나쁜 남자' 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본인의 감정이 우선이었기에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면 나에게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하곤 했다. '그'는 내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불안해하고 언제나 나를 곁에 두고 통제하고 구속하려고 했다. '그'는 내가 자신의 바라는 대로 살지 않자 실망하고 나를 버렸다. '그'는 신체언어적 폭력으로 나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 나는 왜 그런 남자들에게 끌렸을까? 베르그손 식으로 말하면, "왜 그것들 (많은 남자들) 중 하나(나쁜 남자, X)만이 의식의 빛으로 나타나는" 걸까? 베르그손에 따르면 그 답은 '기억의 현실화 운동'에 있었다.


기억작용은 두 개의 동시적인 운동에 의해서 현재 상태의 부름에 답한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기억의 현실화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개의 동시적인 운동", '기억의 상하 운동'과 '기억의 회전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기억의 현실화 운동', '기억의 상하 운동, ‘기억의 회전 운동' 이라는 용어는 베르그손이 직접 창안한 단어는 아니다. 그의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명명한 단어이다). 많은 남자들 중 '나쁜 남자' 에게 끌린다면 이는 '기억의 상하 운동'과 '기억의 회전 운동' 에 의해서 "현재 상태의 부름에 답"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하나는 기억이 전체로서 경험을 맞으러 나아가서, 나누어지지 않으면서도 그처럼 행동을 위해 더 응축되거나 덜 응축되게 되는 상하 이동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다른 하나는 기억이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가장 유용한 면을 내보이기 위하여 그 상황을 향해 방향을 잡는 회전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기억의 상하 운동'은 '전체 기억'이 경험을 맞이하러 특정한 행동을 위해 더 응축되거나 덜 응축되게 되는 상하 운동이다. 여기에서 '더 응축'된 상태의 기억은 '습관기억(꼭짓점 S)' 이고, '덜 응축된 (밑면 원 AB)' 상태의 기억은 '순수기억' 이다. 우리의 몸이 실제로 하는 행동은 '습관기억'에 따른다. 이 '습관기억'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쌓여 있는 '순수기억'이 어떠한 마주침에 의해 '상 기억 (원 A'B', 원 A''B', 원 A'''B'''...)'으로 점차 의식화되며 응축의 강도를 더해가다가 마침내 그 응축의 최고점에서 실제 행동으로 '현실화' 된 기억이다.


내가 왜 나쁜 남자에게 끌렸는지를 '기억의 상하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의 순수기억 어딘가에 나쁜 남자에 대한 기억이 있고 일상에서의 많은 마주침들에서 그에 대해 상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만나는 행동을 실제로 여러번 함으로써 습관기억으로 자리잡게 했던 것이다.


반면, '기억의 회전 운동'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가장 유용한 면"을 찾는 기억의 회전 운동이다. '기억의 상하 운동'이 행동을 위한 '기억'의 응축이라면, '기억의 회전 운동'은 그 행동을 위한 '기억'의 탐색, 즉 "그 상황을 향해 방향을 잡는" 것이다. '순수기억 (밑면 원 AB)' 중에서 어떤 기억이 '상 기억 (원 A'B', 원 A''B'', 원 A'''B'''..)으로 의식화될 것인지, 각 기억들이 회전을 하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측면들을 탐색하는 운동이다.


'X'에 대한 끌림은 '기억의 상하 운동'과 '기억의 회전 운동'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억의 상하 운동'을 통해 나쁜 남자들과 연애를 많이 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남자들을 만나다가 감정적으로 힘들 때에는 따뜻하고 헌신적인 남자들을 만나곤 했다. 어릴적부터 엄마는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아빠의 성격을 문제삼으며 나에게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자가 최고라고 말하곤 했던 것이다. 돌아보니 어릴적에 내가 힘들 때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따스하게 감싸주던 짝사랑하던 남자아이가 그런 이미지였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무수한 기억의 평면들이 회전 하면서 나에게 가장 유용한 대상을 찾고 ('기억의 회전 운동'), 그 대상에 관련된 '순수기억'이 응축되어 '습관기억'으로 하강하면서 X 라는 남자를 만나는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나 나의 경우에는 내가 현재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에 따라 만나는 남자가 변하곤 했다. 하고 있는 일과 취미에 따라서 끌리는 대상이 달라졌다. '기억의 회전 운동'에 따라 그 상황에 나에게 가장 유용함을 주는 대상을 탐색한 것이다. 그러한 다양한 기억의 평면들을 회전시키면서 종종 '나쁜 남자'가 아닌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기억의 상하 운동'에 따라 주로 '나쁜 남자' 적인 성향의 순수기억을 응축시켰고 그러한 특징을 가지는 남자들을 만나왔던 것이다.


나의 순수기억 속 '나쁜 남자'의 원형은 무엇일까? 인간은 대타자를 닮은 사람에게 호감을 가진다. 많은 경우 대타자는 부모일 확률이 높다. 특히 남자의 경우, 나는 아빠와 닮을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곤 했다. 내가 보아온 아빠는 적어도 엄마에게 있어서는 '나쁜 남자'였다. 내가 만났던 많은 나쁜 남자들도 아빠와 닮은 구석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권위적이고, 소유욕이 강하며, 강박적이고, 무뚝뚝하고 무심한 남자들. 마음 속에 거대한 성채를 쌓고 그 안의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남자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자들은 모두 밀어내는 바람에 공허와 외로움에 시달리는 남자들. 그 뒤틀린 마음 때문에 타인과 자신 모두에게 상처주는 남자들. 나의 '나쁜 남자'는 그런 남자들이었다.


사랑이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다.『에티카』 스피노자
기쁨이란 정신이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에티카』 스피노자


나쁜 남자들에게 끌렸지만 나는 그들과 '사랑'을 하지 못했다. 그들을 만나면서 내가 더 완전해진다는 느낌을 좀처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수동적인 감정 (쾌락, 소유욕, 집착, 질투, 안정감)이 주를 이루는 연애를 해왔다. 한때 나는 몇 번의 만남을 거치며 다른 남자들을 만났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나의 '끌림'의 역사를 돌아보며 내가 했던 연애는 모두 비슷한 양상의 변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비단 연애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좋아했던 일과 취미들 역시 파괴적이고 슬픈 방식으로 소모시켜왔다.


한 사람의 진정한 변화는 '기억의 현실화 운동' 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모든 현실적인 선택의 심연에는 슬픔과 파괴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기쁨을 통해 완전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기보다는 불행을 만들고 그것을 수습하고 해결하는 동력으로 살아왔다. 그것은 더 완전해지기 위한 기쁨의 삶이 아니라 불완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슬픔의 삶이었다. 슬픔의 삶을 계속 반복하다보면 어떻게 기뻐져야할지 알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습관기억'에 너무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슬프게 살면 나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맺는 모두가 슬프고 불행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기쁜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다. 내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그리고 기적적으로 나를 아껴주었던 몇몇 사람들로부터. 한 사람이 바뀔 수 있는 '잠재성'의 열쇠는 순수기억이다. 그 순수기억을 잘 찾아내어 기쁨으로 향하는 '기억의 현실화 운동'을 촉발해야 한다.


'기억의 회전 운동'을 통해 그 순수기억을 일깨울 수 있는 배치들 속에 머물러야 한다. 아직 인생을 오래 살아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슬픔을 줄 가능성이 높은 환경 또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 한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과 대상 (책, 그림, 음악, 영화, 운동..)들 곁에 머물러야 한다.


'기억의 상하 운동'을 통해 그 순수기억을 잘 응축해내야 한다. 글쓰기는 그런 면에서 참 효과적인 수단이다. 어떠한 사람 혹은 대상과의 마주침으로 인해 촉발된 나의 기억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써보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명상과 닮았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불안하더라도 글을 쓰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정돈되는 것을 느낀다. 마음이 고통스러운 순간에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마음에서 조금 걸어나와 마음의 표면을 더듬다보면 고통을 조금 거리두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금의 나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기억의 현실화 운동' 을 통해 내가 끌리는 대상 'X'는 나를 더 완전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기억의 회전 운동'과 '기억의 상하 운동'을 통해, 그 중에서 가장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대상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과 슬픔보다 기쁨에 가까운 기억을 쌓아가야 한다. 지금 당장 사랑을 할 수 없다면 수행해야 할 시간이다. 언젠가 만나게 될 '사랑하는 너'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일렁이고 사무치는 마음을 접고, 접고, 또 접어본다.


본 매거진은 <황진규의 철학흥신소> 브런치의 연재 시리즈 <나의 물질, 나의 기억 III> 및 해당 강의에 대한 후기 입니다.


20화 왜 'X'에게 끌리는가?

https://brunch.co.kr/@sting762/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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