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수업 후기 (22)
일반 관념의 본질은 사실 행동의 영역과 순수기억의 영역 사이를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일반 관념'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인간은 동물이기에 생존을 위한 '습관기억'을 가지며, 무의식을 가진 존재이기에 '순수기억'을 가진다. '일반 관념'은 이러한 '행동의 영역 (습관기억)'과 '꿈의 영역 (순수기억)' 사이를 왕래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하여 저마다 다른 일반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랑' 에 대한 일반 관념을 생각해보자.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무수한 생명들의 수 만큼이나 사랑의 일반 관념은 다양할 것이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몇 번의 서툰 연애 그리고 우정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으면서 마음을 닫아 버렸다. 내가 살던 곳은 메마르고 얼어붙은 땅이었다. 마음을 닫은 채였지만 어떻게든 살아가기는 해야했다. 살기 위해 온기를 찾아 헤맸다. 종종 작은 온기들을 만났다.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먼저 주면 나도 줄게. 대신 네가 준 만큼만 줄거야".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사랑들은 모두 '습관기억'에 쏠려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최소한의 온기. 죽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온기. 그것을 얻기 위해 나는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만 골라 만나며 그들과 거래를 했다. 그들이 나에게 온기를 주면 나는 그들에게 돈을 주고, 섹스를 주고, 안정감을 주었다. 나에게 사랑은 '계산적인 거래'였다. 내가 가진 사랑에 대한 일반 관념은 그토록 협소했다.
우리가 이미 그렸던 도식을 참조하자. 점 S에 내가 내 몸에 대하여, 즉 어떤 감각-운동적 균형에 대하여 가지는 현재 지각이 있다. 밑면 AB의 면 위에 나의 기억 전체가 배열되어 있다. 이렇게 결정된 원뿔 속에서 일반 관념은 꼭짓점 S와 밑면 AB 사이를 계속 왕복할 것이다. 그것은 S에서 신체적인 태도나 발언된 말이라는 아주 분명한 형태를 취할 것이고, AB에서 자신의 허약한 정체성(통일성)을 부수어버릴 무수한 상들이 선명한 모습을 띨 것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역 원뿔 도식을 통해 '일반 관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설명한다. 꼭짓점 'S'는 내 몸이 갖는 감각-운동적 균형에 대하여 가지는 현재 지각을 의미한다. 즉, '습관기억' 이다. 밑면의 '원 AB'는 나의 기억 전체가 배열되어 있는 '순수기억'이다. 일반 관념은 꼭짓점 'S'와 밑면 '원 AB' 사이를 왕복하며 형성되는 관념이다. 우리의 일반 관념이 'S'에 더 가까울 때에는 습관기억에 따라 신체적인 태도나 발언된 말이라는 아주 분명한 형태를 취한다. 예를 들어, 내가 사랑에 대해 "사랑은 계산적인 거래야!" 라는 태도를 지녔던 것처럼 말이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이러한 일반관념은 '순수기억 (원 AB)'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허약한 정체성(통일성)이 부수어버릴 무수한 상들의 선명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내가 찾아 헤메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떠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끌렸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해왔던 사랑의 일반 관념으로는 그들과 아무것도 나눌 수 없었다. 기적이 일어나 그들은 나를 '사랑'해 주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에 대한 나의 일반 관념을 180도 뒤집어 엎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그 혹독한 추위를 대신 맞으며 너를 감싸주는 것이었다. 네가 눈보라에 얼어붙기 않도록, 맨발로 빙판길을 딛기 않도록, 네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내 코트와 목도리를 벗어주고 털신발을 신겨주는 것이었다. 때로는 언젠가 닥쳐올 더 큰 눈보라에 네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폭풍우 속으로 내몰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사랑은 '받고 주는' 거래가 아니라 '주고 받는' 거래였다. 사랑은 내가 주었던 '돈'과 '섹스'와 '안정감'이 너의 '눈물'과 '미소'로 돌아오는, '고장난 계산기'의 거래였다.
그렇게 내게 찾아왔던 사랑이 지나갔다. 아니, 내가 그 사랑을 짓밟아 버렸다. 짓밟아서 꺾여버린 사랑은 몇십배의 고통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그 고통마저 외면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다시 메마르고 얼어붙은 땅으로 돌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과의 사랑을 통과한 이후로 나의 사랑에 대한 일반 관념은 바뀌어 버렸다. 그들이 내 곁에 없어도, 지금 당장 만날 수 없어도,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순수기억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 순수기억들이 건조하고 메마른 피부 틈으로 비어져 나올 때마다 멈춰서야만 했다. 아파서 걸을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이전처럼 사랑에 대해 허약한 정체성 ("사랑은 계산적인 거래야!")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점 S로 표현된 감각-운동 기제와 AB에 배열된 기억들의 총체 사이에, ... 동일한 원뿔에 대한 그만큼의 분할인 A'B', A''B'', 등에 의해 표현된 우리의 심리적 삶의 무수한 반복을 위한 자리가 있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꿈의 삶을 살기 위해 우리의 감각적이고 운동적인 상태로부터 떨어져 나옴에 따라 AB로 흩어지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리고 감각적 자극에 운동적 반응으로 응답하면서 현재의 실재성에 더욱 확고하게 애착을 가짐에 따라 우리는 S에 집중되는 경향을 가진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꼭짓점 'S'와 '원 AB' 사이에 존재하는 수 많은 '상 기억'들 (원 A'B', A''B'')이 바로 '일반관념'이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심리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적 삶은 곧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은 자신이 처한 현실적 삶의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 우리의 현실적 조건이 여유가 없다면 마음은 습관기억에 쏠린다. 반면 현실적 조건에 여유가 생긴다면 마음이 순수기억에 쏠리게 된다.
사랑에 대한 나의 마음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사랑이 없다고 믿던 시절에 나의 마음은 빈곤했다. 그 여유없는 현실적 조건에 쫓겨 사랑에 대한 일반 관념이 습관기억에 쏠렸다. 그러다 '너'를 만나 진짜 사랑을 받았다. 얼어 붙었던 마음이 녹고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졌다. 풍만한 마음은 사랑에 대한 일반 관념을 순수기억을 향하게 했다. '고장난 계산기'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이다.
잠시 낮잠에 들었던 것이었을까. 퍼뜩 깨어나보니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았다. 꿈이었구나. 꿈을 꾸면서도 꿈꾸는 줄도 몰랐던, 그래서 영원할 줄 알았던 꿈. 아니 꿈을 꾸고 있기에 그 순간이 영원이었던 꿈.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현실과 꿈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했다. 꿈을 꾸는 것이 무서웠다. 꿈은 언젠가 끝나니까. 꿈에서 깨면 다시 차가운 현실로 돌아와야 하니까.
사실 정상적 자아는 결코 이 두 극단적인 지점 중 어느 한쪽에 고정되지 않는다. 그 사이를 움직이며, 중간적인 분할면들에 의해 대표된 입장들을 차례로 채택한다. 또는 다시 말하면, 자아는 자신의 표상들(각 분할면들이 나타내는)이 이 현재 행동에 유용하게 협조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관념을 그 표상들에게 준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정상적 자아 (건강한 자아)'는 '습관기억'이나 '순수기억' 중 어느 한쪽에 고정되지 않는다. 그 사이를 움직이며, 중간적인 분할면들 (원A'B', 원 A''B''..)에 의해 대표되는 입장들, 즉 상 기억들을 적절하게 채택하는 것이 건강한 자아이다. 습관기억과 순수기억을 유용하게 협조시킬 수 있는 충분한 관념을 형성하는 것. 그것이 '너'들이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었다.
나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기다리지 못했나보다. 현실 속에서 꿈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무작정 눈을 감았다. 그것이 '너'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믿었으니까. 길거리에 나와 떠돌며 깨달았다. 사랑과 꿈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구나. 꿈을 잊어야 꿈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구나. 마치 언제 잠이드는 줄도 모른채 들었던 그 낮잠속에서 '너'를 만났던 것처럼. 그렇게 꿈결같이 찾아온 찰나의 순간만이 영원한 것이구나.
나는 어떻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제 다시 깨어있을 시간이다. 다시 너와 할 '거래'를 준비해야겠다. 너에게 줄 '돈', '섹스', '안정감'을 준비해야겠다. 다시 잠들 수 있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삶을 열심히 살아내야겠다. 언젠가 까무룩 단잠에 빠져드는 순간 너를 만날 수 있도록. 그 때 너에게 필요한, 네가 필요한줄도 모르는 그 무엇을 줄 수 있도록. 그렇게 다시 너를 사랑할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