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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니 Jun 28. 2018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vs 독일

한국축구의 기적은 아직 현재진행인 것이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던,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어젯밤은 그저 #패러~패러~패러다이스



2002년은 한국 축구의 역사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에 한 방점을 찍었던 해이다. 선수들은 월드컵 4강이라는 지금 보아도 비현실적인 결과를 이루어냈으며 그들을 응원하던 국민들은 시청 광장과 광화문을 점령하고 800만명 이상이 거리로 나와 전세계 외신에 대서특필로 보도되는 진기한 뉴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어느순간부터, 우리의 그 빛같고 기적같던 순간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듯 했다. 2002년 세대들의 대부분이 은퇴하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과도기였던 2014년 월드컵에서 우리는 굉장한 수치를 맛봤다. 2002년은 소위 개최국 어드밴티지, 감독, 선수 빨이었다라는 슬픈 현실에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었다.


그 인고의 시간동안 한국축구는 오직 유럽 무대에서 손흥민이라는 선수가 홀로 자라고 있을 뿐, 2014년의 퇴행한 모습에서 좀처럼 나아지지 못했다. 그렇게 2018년이 되어버렸고, 눈에 띄게 무관심한 월드컵을 맞이했다.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이루어졌던 평가전에서도 부진을 거듭했던지라 ‘이기자’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보편적이 되어버렸다. 김빠진 콜라에서 느껴지는 녹은 얼음 비린내 같은 기분을 안고 우리의 첫 경기는 1:0의 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조별리그에서 상대해 볼만 하다고 했던 팀이 스웨덴이었다. 그러나 우린 이때까지 보여준 답답함의 연장선에서 패했고 다음 대진 상대인 멕시코는 유력한 후보인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이겼다. 우리 앞에 놓인 운명은 마치 보병과 장갑차가 대치하는 것 같았고 항복하기 위해 걸어나오는 졸전국의 군주같았다. 그렇게 두번째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도 패했다.


그런데 멕시코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래, 진작 이렇게 했다면 하는 일말의 생각이 들게 했던 경기였다. 너무 쉽게 골을 내어줬다는 점에선 이전 경기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선수들에게 인지되었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2패, 조 4위. 남은 게임의 상대는 독일. 사실상의 정서는 멕시코전에서 보여준 게 우리의 최선이었고 우린 거기까지니 독일한테는 다실점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여기겠다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멕시코전에서 주장인 기성용의 부상으로 독일전 결장이 우려되며 침몰하기를 기다리는 배에 탄 것처럼 가망이 없음에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처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려면 동화가 있어야만 한다. 나에게 축구란, 세상을 각박하게 만드는 처참한 자본의 논리를 뒤집어 엎는 동화와 같은 살아있는 원리였다. 선수의 부정한 선발이나 심판의 매수와 같은 그런 유의 모든 부패를 뒤로하고라도, 오직 축구의 룰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팀전이란 것과, 어떤 조건을 가진 팀이 맞붙든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라는 짜릿한 원리란 거다.


어제의 우린, 바로 그 아름답고 정의로운 축구의 짜릿한 룰로써 동화보다 동화같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과거의 화석으로 남는 것 같았던 한국 축구의 기적의 역사는 여전히 살아서 계속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 독일전 승리는, 개최국의 어드밴티지도 없었으며, 명장도 없는데다, 떠올리면 걱정부터 앞섰던 선수진으로 만들어낸 엄청난 승리였다.


독일전과 멕시코 전의 다른 점은, 반드시 이기겠다라는, 승리를 향한 투지다. 항상 우리 대표팀은 투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두 번의 게임에서 지고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남아있던 우리에게 비록 실력이나 조건의 이점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절대 질 수 없다라는 투지만큼은, 선택할 것인가의 말 것인가의 문제였고 그 선택은 우리 대표팀이 전차군단을 쳐부수게 만드는 결과를 향해 전진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투지가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그곳으로 가게 만든다는 거다. 우리는 처음엔 버티고 있었지만 어느순간 승리를 향한 전진패스를 시도했고 그런 우리에게 마침내 골이라는 결과가 찾아온 것이다.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 처참한 현실에서 나는 스웨덴 전을 치르던 우리 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만 있어 늘 졌던 게 아닐까. 그래, 노력해보자 라며 했던 노력은 나는 거기까지지, 에 불과한 멕시코전의 모습과 같았고 매번 넘어질 때마다 내 앞에 놓이는 선택지는 역시 세상의 거대한 벽은 뚫을 수 없어 라는 거 하나뿐이었던 것 같다. 물론 세상에는 축구와 같은 아름답고 정의로운 룰은 없다. 그러나, 인생에는 있다. 혼자서는절대 살아갈 수 없다는 것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인생에는 투지가 필요한 것이다.



아마 점점 더 시간이 흘러갈수록, 세상에 유일하게 남는 정의란 축구가 될지도 모른다. 축구는 많은 경우에, 더욱 간절한 팀이 승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축구는 늘, 절망 속에서 기적을 이뤄왔고 그것은 마치 정의구현과 같은 짜릿함이 존재한다. 앞으로의 한국 축구가 더욱 기적을 만들어 가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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