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날선 칼
도대체 무엇이 우선하는지 도무지 분별하지 못하는 악한 시대의 거센 시류를 정면으로 맞서며 거슬러 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를 불멸의 이국종이라 부르고 싶다.
환자의 인권을 가장 지키는 중요한 방법은
'목숨을 구하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명언도 아니며 존경받을 만한 발언은 더더욱 아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말이 존경받을 만한 말이 된다는 건 그만큼 세상이 비정상이라는 뜻이니까. 이국종 교수는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 의사에게 지극히 마땅한 사명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가 연단 위에서 이 당연한 것을 변명처럼 말해야 한다는 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이 참담하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게 된 데 자괴감을 느끼고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게 괴롭다는 그의 고요한 외침이, 많은 국민들에게는 사무치게 들리는 것 같은데 정작 들어야 할 소수의 힘있는 사람들에겐 들리지가 않는 듯 하다.
그가 기대한 대한민국은, 앞으로 자신이 생활을 하면서 크게 다치거나 하였을 때 30분 내로 중증 외상센터에 실려와 30분 이내에 수술적 조치를 받을 수 있는 나라란 것을,
그걸 기대하고 여기에 온 것이지 않겠는가.
귀순병사가 꿈꿨을 나라의 모습은 그저 이상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지금 북한에서 귀순 병사가 왔는데 북한은 우리의 휴전상대이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히니까 쉬 건들지 말아야 한다는 따위의 계산이, 과연 생명보다 중요한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단언컨대 없다.
그리고, 이국종 교수는 그 일을 했을 뿐이다.
그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필사의 칼을 들었는데, 정작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날선 칼의 위협을 받고 괴로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과연 그 어떤 칼이 그의 뜻을 죽일 수 있을까. 그의 정절을 꺾을 수 있을까. 그는 그가 바라는 나라를 목숨을 걸고 몸소 세워가고 있는 진정한 국민이다.
내가 어렸을 때, 점점 흉부외과의 인력이 줄어든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나라의 현실에 크게 충격받은 기억이 난다. 흉부외과는 필요적 측면에 의해 존재하는 분야다. 그런데 필요적으로 존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는 건 나라가 그 분야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 느꼈던 거다. 소방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난 그 때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이 이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만큼, 나라의 현실은 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때부터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하지만 난 오늘도 가슴에 들어찬 습기를 삼킬 수밖에. 대안이 없는 비판은 비난과 다를 바 없다. 지금도 나라를 위해 애쓰는 더욱 많은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있음을 안다. 아마 그들이 기대하고 만들어 가려고 애쓰는 나라 또한 이국종 교수가 생각한 나라와 다른 나라가 아니리라 믿는다.
나의 최선은, 그저 내가 사는 범위 내에서 내가 꿈꾸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뜻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뿐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마땅한 사명이 대우받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저만치 보이겠지.
죽여도 죽지를 않고,
죽어도 결코 죽은 게 아닌
의사(醫師)이자 의사(義士)인
불멸의 이국종을 가슴 깊이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