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본 영화 '조커' 그리고 For once in my life.
영화 <조커: 폴리 아 되>
사랑을 다룬 척 하지만 사실은 고독의 초상이었다.
조커의 그녀일 줄 알았던 할리 퀸도 '조커'라는 페르소나를 사랑했을 뿐,
그 이면의 인간 '아서'까지 바라보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사랑을 믿어보고 싶어 노래를 불렀다.
'For once in my life'.
애석하게도 그 사랑은 환상으로 흝어졌지만..
물론 우리가 사는 삶도 비슷하다.
웃는 가면을 쓰며 살아가야 하는 숙명인 것만 같다.
그게 타인에게 호감을 얻고 사랑도 받을 수 있는 모습일 테고,
때로는 그 가면으로 영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연약하고 상처뿐인 진짜 나는 들키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외면받기 싫어서 선택하는 처절한 보호막이라면
그것처럼 애달픈 굴레와 속박도 없지만.
그래서일까.
모든 이들이 열광하는 조커라는 페르소나보다
나는 그 안의 아서가 신경이 쓰인다.
세상이 사랑하는 얼굴 안에서
애써 눈물을 참는 당신이 느껴져서 자꾸 슬프다. 요즘 들어 더.
당신이 무심코 고르는. 무심코 꺼내는. 무심코 말하는.
'무심코'라고 일컬을 그 모든 선택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니까.
무심코라는 단어 속에 때로는 진심을 슬쩍 감추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또 한 번, 무심코 이런 소리 해본다.
아니 이제는 이런 소리를 좀 해야겠다.
가면 속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나도 챗지피티 아니고 자판기도 아닌,
진심 앞에 투명해져 버리는 그저 '사람'일 뿐이라서.
웃어야 한다는 전제에 놓여야 하는 삶처럼 두렵고 불안한 게 있을까.
때로는 웃지 않을 자유, 펑펑 울면서 스스로를 내려놓고
치유할 시간과 여유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사회적 차원의 진정한 공감부터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진심 앞에서는 조금 망가져도 괜찮다.
일부러 망가져 있는 지금 이 글 처럼.
망가지는게, 차라리 망하지 않는 용기가 되어주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