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파도를 타는 이, 조용히 담요를 건네두고 가는 이.
말의 힘을 안다. 그래서 쉽게 쓰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쓴다. 도저히 꺼내지 않고서야 마음속에 넘치는 파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다. 하지만 마음에 거센 폭풍이 일 때에 흘러넘치는 문장과 참을 수 없는 말 끝에는 기어코 날카로움이 배어있다. 결국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날카로움에 찔려 피 흘리는 상처든, 내 칼 끝에 스민 눈물이 그에게 번진 것이든 내 말에 아플 상대방이 있다. 그건 도리어 나를 아프게 한다.
그래서 나는 쓰기 전에 마음의 폭풍이 그나마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쉽지 않아 애쓴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폭풍은 어디에서 일었는지, 왜 나는 유난히 반응했는지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폭풍에 요동치는 파도는 진주를 머금은 조개를 데려온다. 그렇게 나는 진주를 찾아내면 언어 속에 남겨둔다. 감정이 지난 자리에도 반짝이는 희망의 여운이 있음을 남겨두고 싶다. 말의 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어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센 폭풍우를 만났다.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온갖 파도가 뒤엉켜, 나를 끝없이 침잠시켰다. 바다가 나인지, 내가 바다인지. 도통 마르지를 못했다. 숨 쉬고 싶었다. 폭풍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기엔 이미 감당할 수 없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홀로 담아낼 수 없어서 기어코 나는 흘러넘치게 했다. 정제되지 못한 울분의 문장들이었다.
문장이라는 틀에 담긴 내 마음을 느낀 이들이 있었나 보다. 여기저기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같이 울어주는 이, 따뜻하게 손 잡아주는 이, 아무렇지 않게 밥은 먹었냐고 묻는 이. 문장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닿고 있었다. 연결되어 있었다. 그동안 나는 홀로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는데. 때론 그렇지 않아도 되는구나. 연결이 파도가 되어 진주알은 내게 돌아왔다. 그림자에 숨기지 않고 차라리 꺼내어 흘려보낸 건 차라리 나았던 것 같다. 되돌아온 문장 속 담긴 따뜻한 그들의 마음을 읽는다.
내가 미처 다 꺼내고 낱낱이 쓰지 않더라도 세상에 내 감정의 진동은 남아있다. 누군가를 향한다. 닿은 이에게는 나에게 감정의 회신을 보내온다. 전혀 알 길이 없는 누군가의 글 속에도 때로는 내 마음이 대신 쓰여있다. 말한 적도 없던 마음이 전부 다 읽힌 듯이, 내가 누군지를 전부 꿰뚫고 있듯이, 날 것 같은 내 마음을 그들의 문장으로 대신 꺼낸다. 누군가는 노래로 꺼내어 불러준다. 이제는 그게 무섭지 않다. 도리어 나를 공감하는 이 들이 있구나, 나의 마음을 대신 꺼내어주는구나. 마음을 바꾸니 세상으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얻는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홀로 이 바다의 풍경을 보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들과 같은 바다에서 같은 폭풍우를 만나고 같은 감정의 파도를 헤치며 그렇게 같은 흐름을 지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파도를 타더라도 그게 우리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공감이 엮일 때, 그 힘은 이렇게나 세다. 서로가 홀로 단단해진다.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니 말을 안 해도 서로 다 아는 것 같다. 조용히 눈물 속에 묻어둔 나의 새벽을 누군가는 조용한 문장으로 적어두고, 누군가는 큰 목소리로 노래하며 소리친다. 더 이상 이곳은 나의 바다가 아니라 우리의 바다다.
거울같은 존재도 감사한데, 그 너머의 깊은 마음을 가진 이를 본다. 조용히 울던 나를 다 안다는 듯, 내 파도의 흐름을 함께 흐르며 새로운 리듬으로 티키타카하는 이도 있다. 말이 없는 대화를 나눈다. 같은 파도를 타고 있는데도 폭풍우가 칠걸 미리 안다는 듯이 무심코 구명조끼를 먼저 던져준다. 흠뻑 다 젖은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따뜻한 담요를 건네고 간다. 공감의 존재 너머 누군가가 있다. 왠지 내가 폭풍우에 감겨 사라지지 않도록, 감기 걸리지 말라는 듯이. 아무 말 없이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어주는 마음은 그저 사랑이라는 말 밖에 표현할 단어가 없다. 말의 힘을 알기에 나도 조심스럽게 남겨둔다.
목이 따꼼하고 코가 찡찡할 때 그가 홀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조용히 쓰던 내 마음과 꼭 닮은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