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의 나와 서른아홉의 내가 만나, 미래를 바라보다.
순수한 진심이 오롯이 문장마다 남아 있던 스물넷의 내가 쓴 편지.
어쩌다 그 편지가 올해 다시 나에게 나타나게 됐는지..
다시 읽으면 꺄악 소리만 나오는 그 추억 속에 정확히 오늘 날짜가 쓰여져 있다.
문득, 그때의 어린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의 내게 다시 알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잊지 않아야 할 메시지가 그 안에 있었던 걸까.
이 편지가 지금 어떤 의미인지 한참 생각해보았고
11월 19일이라는 날짜를 축으로
15년의 어떤 궤적이 한 바퀴 완주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긴장을 꾹꾹 눌러 담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곧잘 하는 사람이었다.
불안일 때도 설렘일 때도 분노일 때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려운 자리, 곤란한 상황, 불안함이 감도는 분위기에서 맡아낸 역할이 많았다.
감정이 티갸 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사실 나는 감정에 너무나 예민한 사람이다.
그래서 억지로 무디게, 무딘 척을 했던 것이다.
그 끝에 만난건 어색한 표현을 하는 나일 뿐이었다.
이제는 그 진동이 내 삶을 더 진하게 만드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에게 감정은 너무나 감출 것이 아닌 드러낼 장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삶을 창작물로 바꾸는 대담한 시선까지 생겼다. 이게 진화 아니면 뭘까.
누군가를 향한 애정이 꾸준히 돌고 돌면 시선이 깊어진다.
그렇게 성장하는 감정이 된다.
누군가를 향한 꾸준한 감정은 곧, 다시 나를 향하는 감정이 되어 스스로를 보듬는다.
이 15년의 궤적이 나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물론.. 거기까지 도달한 것은 참 외롭고 어려운 배움임에 틀림없다.
타인을 향한 감정이 나를 향하는 것임을 깨달으려면
그만큼 감정이 깊고 진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것이고
그건 이따금 나를 괴롭게도 하기에
스스로를 진정 아끼는 마음도 공존해야 건강하게 유지된다.
그럼에도 감내하는 과정은 결코 너그럽지 않다. 부드럽지 않다.
진정으로 치열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서툴지만 떨리는 마음 하나만 믿고
무작정 글을 건네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실행을 하던 사람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랬던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썩 다르지는 않은걸 보니 이게 원래 내 본질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조용한 듯 싶어도 누군가를 놀라게 하는, 여전히 호기로운 사람이구나.'
일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발견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진짜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나타나는 나다움이었다.
하지만 이걸 알고나서는
내가 세상을 대하는 모든 방식이자 시선이며, 이치이자 근원임을 이해했다.
모든게 하나로 통하는 기분이었다.
한때 나는 감정을 '배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여겼다.
감정과 엮였을 때 늘 불편했던 상황들을 다루는 것이 영 지혜롭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감정과 멀어졌고 그렇게 나는 더욱 건조해졌다.
지금은 감정이야말로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임을 안다.
그래서 사랑이 두려운 대상이 아니고 감추지 않으려 하며
오히려 나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이유도 원인도 모를 심장의 진동이 만든 이 15년의 여정이
두 번째 트랙을 달리게 한다.
어쩌면 더 즐거울 수도 더 슬플 수도
더 벅찰 수도 더 외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내 삶의 축이 될 짙은 여정일 것이다.
이 길이어야만
더 건강해질 나를 만나게 할 것이기에,
더 살아있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기에,
더 깊어지고 진해질 내 인생의 순간들을 만나게 할 것이기에,
나는 이 트랙을 웃으며 달릴 수 있도록
운동화 끈을 더 꽉 매며 또 한 번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