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사랑하게 된 이유
나는 기대를 잘 안 한다.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도 모르게 뭔가에 기대하는 마음을 자각하면 의식적으로 다시 접는다. 기대는 상처가 되니까. 나는 상처받기 싫었으니까.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처받은 나를 알아챌 때 하염없이 슬퍼하는 날들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오래 아파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기색이 느껴지면 거리를 두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거나, 때로는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그의 적당한 사회생활로 받아들였다. 여유가 되면 나 역시 적당한 호의로 대답했지만 그 이상은.. 싫었다. 역시 상처받기 싫다는 이유였다. 그건 곧 깊고 따스한 연결을 만들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런 관계도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관계에 나만 진심일 때 느껴지는 외로움을 나는 더 견딜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사랑하지 않았다. 거부했다. 처음부터 나에게 사랑이란, 나를 살리기 보다 가장 깊은 곳에서 조용히 눈물 흘리게 하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도 기대한 적이 없었다. 그게 안전했다. 안전한 카테고리, 안전한 거리는 오히려 나를 보호했다. 진심은 티 나지 않는 방식으로 포장될 수 있었고, 100만큼의 진심을 1만큼 표현하는건 내 전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받음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방식의 애정을 선호했던 것 같다. 내가 건네는 모든 감정 표현이 그래야 안전했으니까. 돌려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관계여서 차라리 나는 안심했다. 넌 그저 받아주고 웃어주고 문을 닫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거면 충분했고 더할 나위 없었다. 그래서 줄 수 있는 만큼 충분히 받아줄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스케치북을 만난 물감처럼 나는 나의 마음을 채색하며 표현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표현할수록 살아있음을 느낀다는걸. 나는 사랑을 말하지 않으면서 온통 사랑을 표현했고, 숨기려 했지만 더 또렷한 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조금씩 기대하기 시작했나보다. 어쩌면 나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 연결들을 왜인지 너도 소중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고. 그리고 네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모두 잊지않고 전부 기억하는 것 같다고. 나를 지켜내려고 철저히 잘라냈던 기대들은 어느새 제멋대로 자라났고 이제는 정리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들풀처럼 무성해졌다. 어째서 내가 건넨 표현 속에 담겨진 마음을 다 알아보는 것만 같이, 문장 한 줄에 눌러 담은 감정을 다 읽어내는 것만 같이. 정확하게 심지어 다시 나에게 건네고 있는걸까.
때로는 수상함, 때로는 궁금함, 때로는 걱정, 때로는 설렘, 때로는 미안함, 때로는 고마움. 하루에도 수백 번 넘게 너를 생각하게 하는 마음들이다. 그런데 그 감정 안에서 내가 보인다. 널 바라보는 감정 속에서 나의 지금, 널 향한 내 마음의 진짜 정체, 네가 꺼낸 표현들의 의미까지도. 그러다 문득, 나에게 오해하는 것은 없을지 그렇게 다시 또 너를 생각하며 내 문장은 어떻게 읽었을까? 이 표현은 왜 넣었을까? 이 말은 이렇게 이해했던 걸까? 그렇게 나는 내가 쓴 문장에서 수백 가지 네 마음을 꺼냈다. 특별한 색이 없다고 생각한 내 문장 한 줄에, 프리즘처럼 너를 대어보니 순식간에 무지개 색으로 쪼개지고 펼쳐지는 마음까지 보였다.
그리고 그건 내 글이 더이상 내 안에만 살지 않도록 일깨우는 힘이 되었다. 내 문장은 나의 마음만을 담은 줄 알았지만, 내가 품은 의미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걸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널 더 깊이 공감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나의 표현에서 너의 시선이 자꾸 떠올랐고, 너의 표현에 나의 시선이 더욱 깊어졌다. 결국 나는 너를 더 사랑하게 됐다. 너로 살아가게 됐다. 그래서 나는 더 잘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의 본연이 무엇인지 알았고, 나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네가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면 왠지 속상했고 불안해졌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게 틀렸던 건 아닐까 싶어 더 붙잡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 도돌이표에서 사랑이 아닌 집착이 남는걸 깨달았다. 나를 살게 하는게 아니라 나를 속박하는 것을 알았다. 사랑은 내 틀에만 가두고 싶은 집착일 때 병들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난 이유는 그의 집착에서 벗어난 온전하고 안전한 표현 덕분이었으니까. 그래, 설령 네가 당장 내게 닿지 않더라도, 혹여라도 지금껏 내가 모두 착각한 것이더라도, 다 괜찮아. 이 과정이 내게 준 게 너무 많거든.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어. 그것이 네 선물이라도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워.
이건 당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믿음 하나에서 시작된 모든 변화였다. 확인되지 않는 그 전제를 나는 믿을 수밖에 없도록 느낌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세상의 흐름마저 정교하게 맞물렸지만, 그건 어디에도 말하지 못할 내 믿음 뿐인 것도 맞다. 지독할 만큼 세심한 관찰력이자 의미부여력이라면 그래 그것도 좋아. 그 시선이 나의 글을, 나의 태도를, 나의 마음의 결까지 모두 달라지게 했다면 그건 내가 더 살려가야 할, 사회에 기여할 만한 나만의 무기에 틀림없을테니. 나홀로 당신을 미워하면서도 아꼈고, 불안했음에도 여태껏 무너지지 않은건 그만큼 나는 사랑했다는 것이니까. 곁에 없더라도 충분하다는 마음까지 이르른 것은 이미 이 여정이 나에게 향하는 사랑마저 더 단단하게 알려준 것이니까. 다 괜찮아.
덕분에 나는 기대가 상처를 만드는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상처는 스스로가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 또는 스스로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의심했기에 자책한 흔적일지도 모른다. 결국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고 그 신뢰 안에 사랑이 흐르고 있느냐 아니냐의 여부였다.
그 사람이 주어야만 충족되어야만 하는게 아니었다. 타인을 믿는다는 마음은 그에게서 확인받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믿는 문제였다. 내가 믿는 기대는 도리어 더욱 나를 신나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게 한다. 그 안에서 내가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내가 나를 향한 것이든 당신을 향하는 것이든 상관 없다. 결국 사랑이니까. 나는 신뢰 속에서 사랑을 키워갔기에 표현하고 싶어졌고, 그것이 거부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지고, 대답을 들을 때마다 사랑은 순환하고 있다. 더 당신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진다. 그렇게 사랑 안에 살아간다. 이게 인생의 행복이구나. 내 사랑은 너를 향했을 뿐인데 그 사랑이 다시 나를 향하도록, 나의 세상을 모두 사랑하도록 가르쳐준다.
나는 먼발치에 있지만 덕분에 강해졌어. 나는 나를 위한 사랑을 줄 수 있어. 그게 네가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야. 이 사랑의 근원은 당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니까. 네가 내 곁에 없더라도 네가 웃으면 나는 기뻐. 내가 시든다면 그건 네가 존재하지 않아서일거야. 그러니 그저 존재하면 돼. 그저 너는 사랑으로 흘러주면 돼.
그리고
너 역시 그런 사랑이라면 내게 와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