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이 언제부터 반찬이었나, 서양에는 반찬 개념이 없는데...?
제가 일했던 화덕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알타리무와 오이로 피클을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아주머니들 4명이 오면 피클만 8 접시를 드립니다. 인당 두 접시씩 드시는 셈이죠. 시원하게 잘 담갔다면서… 나름 이탈리아 현지의 음식을 최대한 재현하려는 곳이었지만 가장 맘에 들지 않았던 건 피클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위키백과에는 피클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오이 초절임, 오이를 소금에 절인 뒤 식초, 설탕, 향신료를 섞은 액에 담가 절인 음식. 샌드위치나 햄버거에 넣어 먹는다.
제가 오늘 말하고 싶은 게 여기에 들어있어요. 샌드위치나 햄버거에 넣어 먹는다.
제가 이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피클은 반찬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서양 음식을 먹게 되면 피클을 필수적으로 서브해야 하죠. 이것에 대한 의문점이 들었던 계기는 드라마 '파스타'였습니다. 에피소드 중에 극 중 배경으로 나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스페라'에서는 새로운 셰프의 독단적 결정으로 푸아그라와 스푼, 피클을 이 세 가지 해고합니다.
동물학대의 대표 격인 푸아그라, 파스타 본연의 맛을 느끼기보다는 해장국처럼 흥건한 양의 소스, 그리고 청량감이 있어 리프레쉬는 되지만 그 맛의 정체는 많은 양의 소금과 설탕 범벅인 피클. 이 중 오늘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그중 피클입니다.
드라마 내에서도 피클을 해고하고 나서 레스토랑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됩니다. 피클 없이 파스타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에 대한 컴플레인은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일어납니다. '피클 없이 어떻게 파스타를 먹으라는 거야." "아니 레스토랑에 피클이 없는 게 말이 돼?"라는 반응은 기본이죠. 홀의 직원들이 피클은 파스타 본연의 맛을 잃고 설탕도 많이 들어있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안내 멘트를 하면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들어."라는 식의 호통을 칩니다.
인스타에서 해외의 파스타 사진을 찾아보면 피클을 주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마찬가지로 피자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대부분의 서양의 음식에서 피클을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걸까요.
우선 피클을 먹는 경우를 찾아봤어요. 제가 영어로 구글링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듭니다. 한글로 검색했을 경우 이탈리아에서 피클을 먹는 경우는 간혹, 간혹 생선 혹은 고기 요리의 곁들임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덧붙여 이 말을 하신 '보통날의 파스타'를 작성한 '박찬일' 책 저자는
단언컨대, 평생 한 번도 피클을 먹지 않고 죽는 이탈리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피클을 많이 먹는 나라이긴 하지만 파스타나 피자에 제공하는 사이드 메뉴의 개념은 아닌 듯합니다. 같이 일하던 셰프 중 미국에서 자란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의 얘기로는 '피클은 샌드위치나 버거를 먹을 때 말고는 같이 먹지 않는다.'라고 했었고, 미국인의 남편을 둔 유튜버 '썸머'님의 영상에서도 피자에 피클을 먹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피자에 피클이 왔어야 해?' 하면서 남편이 되물었죠. 이 영상 재밌게 봤습니다. 남편은 라이브를 시청하던 시청자들과 '썸머'님이 끝까지 자신을 놀리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런 피클을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서양 음식에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걸까요. 제 생각에는 우리나라의 '반찬'문화를 대신하던 서양의 음식 중 피클이 부합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경양식집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1960년대 첫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시청역 근처에 생겼습니다. 이 두 곳의 당시의 사진을 볼 수 없어서 언제부터 피클을 제공했을지 감이 잡히진 않지만 현재의 이 두 곳에서도 피클은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경양식집은 경양식답게 깍두기도 제공하고 있어요.
한국인의 식문화에 끼워 맞춰진 대표적인 서양의 음식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제일 먼저 피클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의 이유로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째로, 문화적인 요소로서 저는 그 나라의 음식은 그 나라의 본연의 느낌을 최대한 느끼고 싶다는 점에서 안 좋은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느끼함을 극도로 견디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입맛으로 봤을 땐 쉬운 접근을 위한 방법으로 피클을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클의 제공을 매뉴얼화하여 생각하는 방향은 문화의 무지함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무지함은 실제 이탈리아에서도 영향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어느 한 가게에 "우리는 피클을 제공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메뉴에 써넣을 만큼 한국인들의 피클 컴플레인이 많았다는 얘기가 실제 하는 걸 보면 말이죠. 취향적으로 드시는 것 까지야 뭐라 할 순 없지만 원래 제공되던 게 아닌 걸 오히려 왜 안 주냐며 말하는 무지는 굳이 남에게 보이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여러분들이 그런 매뉴얼을 가지게 된 건 이전 외식업을 운영하던 사람들의 행태로 인한 것이긴 하지만요. 제가 현재 일하는 곳에서는 저는 피클의 제공을 고객이 찾을 시에만 제공합니다. 아예 없앨 순 없겠더라고요. 제가 여기서 느끼는 고객의 반응은 대부분 당연히 줘야 하는 피클을 왜 주지 않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저기요 피클 안 주셨는데요." "저기요 피클 안 주세요?" "저기요 여긴 원래 피클 안 나와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요청이 대부분입니다. "저기요 여기 혹시 피클이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피클 제공은 당연한 건데 이걸 굳이 말하게 만들어?"의 뉘앙스 같아요.
여담으로 반대의 경우를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외국에서 한식을 제공하는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한식은 한상차림의 문화를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밥그릇에 밥을 담고 상에 차려진 반찬을 스스로 생각하며 먹는 문화가 한식의 문화라고 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대부분 일식처럼 혹은 푸드코트처럼 각자의 네모난 쟁반에 개개인의 음식을 내어줍니다. 뭐 외국의 위생관념 상 한식의 문화는 비위생적으로 보이기에 이런 문화를 개입시킨 듯 하지만, 한식의 문화가 그러한 이유로 외국인들에게 일식이나 푸드코트처럼 그렇게 전파되는 건 기분이 별로더라고요.
두 번째로, 맛을 느끼는 관점에서 좋은 방향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피클은 앞에서 말했듯이 파스타 혹은 다른 음식의 본연의 맛을 해치는 음식으로 저는 취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건강상의 이유로도 설탕 범벅의 피클은 반기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큰 건 그 건조한 파스타의 느낌을 꼬독꼬독 씹어보며 그 안에 배어있는 만든 사람의 스타일을 느껴보는 즐거움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강한 양념의 식문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음식의 느낌을 최대한으로 느껴보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파스타의 소스는 점점 많아지고 많아진 자극적 풍미와 느끼함을 가리기 위해 더 자극적인 피클로 씻어내고, 다시 자극적 풍미와 느끼함을 입안에 가득 넣고 달고 신 피클로 씻어내고… 음식이 입안에서 느껴질 충분한 여유가 없습니다.
세 번째로, 피클이 채소라서 건강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유튜브에 피클 레시피를 검색해보세요. 소금과 설탕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채소에 어떤 것을 넣어도 채소라면 다 건강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건강한 음식의 아이콘이라 생각하는 '김치' 또한 과연 건강한 음식일까요? 초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유산균을 섭취하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나트륨의 양을 감당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치는 일정기간 지나면 유산균은 다 없어지고 소금에 절인 섬유질일 뿐입니다. 저는 단지 맛있어서 먹는 겁니다.
지금은 한국의 서양음식점에 자리 잡힌 반찬 개념의 피클이라는 문화, 한국의 고유문화로 봐야 할까요?
그렇게 한국 고유문화로 자리잡기 이전에 피클의 본 고장에서 피클을 대하는 모습을 먼저 존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