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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Aug 15. 2022

생의 한 가운데

생의 한 시절이 저문다는 것

20대 후반, 나는 생의 끝에 매달려 있었다. 권태 또한 사치임을 알게 된 유학생활이 저물고 나서였다. 


2018년의 나는 많이 아팠다. 자주 병에 걸렸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렸다. 당시 만나던 애인의 과거를 용서할 수 없어서 끙끙댔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을 2년이나 감당하는 동안 폭력적으로 변했다. 몸이 망가질 때까지 매일 술을 마셨다. 강박증과 애정결핍에 시달렸다. 학위과정을 마치고 도망치듯 귀국하고 나서는 한동안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서울 땅을 더듬거렸고 뭐든 조심하며 살았다. 구직을 했고 발 디딜 곳이 생겼을 때쯤 애인을 버렸다. 10년 지기 친구와 뉴욕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다. 맨해튼 밤거리를 걷고 있자니 왠지 그 사람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서도 수프를 먹고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그에게 그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때는 글도 생각도 다 지겨웠다. 전 애인과 얽혀있는 인연이 많아 어떤 플랫폼에도 솔직한 글을 쓸 수 없었다. 내가 구사하는 언어들이 표독스럽게 느껴질 때쯤, 나는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접었다. 그렇게 2~3년이 흐르는 동안 더 이상 손으로 일기를 쓰지 않고 하루하루의 느낌조차 기록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표현 욕구는 그러다가도 문득 스멀스멀 올라온다. 좋은 사진을 볼 때,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함께했던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말없이 누워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 등등. 나는 감동이든 슬픔이든 잔뜩 풀어내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유명무실한 블로그를 여전히 살려둔 이유다. 


내 닉네임 '루이제'는 <생의 한 가운데>라는 소설을 쓴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019년 어느 시점에 접한 후 내 삶의 정언명령이 되어버린 책. 한때 나를 뒤흔들어 놓았던 주범이었던 전혜린이 번역했는데, 남은 인생에서 이 책을 뛰어넘는 책은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흐릿하고 뿌옇고, 손에 잡히지 않는 '달빛'에서 최애 작가 '루이제'로 모든 닉네임을 바꾸었다. 주인공 니나 부슈만을 생각하면 생의 의지가 솟았다. 확신에 차있고, 남자에 휘둘리지 않고, 유약하지만 강인한 여성. 놀라울 만큼 지적이고 총명한 사람. 불태울 만큼의 강렬한 생의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주인공이 내게 너무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니나처럼 살겠다고 결심했고 니나와 동일시된 작가 루이제는 영원한 내 삶의 표상이다. 


분명 이제 전만큼 글을 쓰며 살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글에, 하루하루에, 모든 감정에 영혼을 쏟아부었던 그때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 지금의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침이 되면 출근해야 한다. 매일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에서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한다. 절절히 살아가진 못해도 근근이 살아갈 수는 있다는 걸 안다. 내일 세상이 끝날 것처럼 술을 퍼먹지도 못하고, 담배연기로 폐를 망치지도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우울한 모티프 없이 살아가는 일에 더 많이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명징한 정신으로 '생의 한 가운데'에 서있고 싶다. 


순간을 촌철살인으로 붙잡지는 못해도, 주어진 시절들을 잘 건너가면서 현명하게 노를 저을 수 있기를. 그 안에 언어들이 그득그득 담기진 못해도 짧지만 분명한 문장들로 곳곳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20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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