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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Aug 15. 2022

마음에 든다는 것

집 근처 필라테스를 등록하며

요 근래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필라테스를 시작한 이유는 몇 달 전 병원 의사 선생님이 나더러 골반이 틀어져있다고 꼬집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당근마켓에서 회원권을 양도받아 저렴한 프랜차이즈 요가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할까도 했지만, 막상 가보니 정원도 너무 많고(35명이라니, 세상에!) 공장식 운영 시스템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회사에서 필라테스 샵, 거기서 우리 집까지 오는 동선도 너무 복잡하기도 했고.


대안으로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의 동네 개인 필라테스를 찾았다. 인스타로 조금 사전조사를 해보니, 바른 몸에 대한 조예가 깊은 여자 선생님 혼자 하시는 필라테스였다. 실제로 만난 선생님은 과하지 않은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두꺼운 안경테와 자연스러운 굴곡의 체형.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나는 운동을 할 때 이러한 자연스러운 모습(?)의 선생님께 가르침 받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왜냐하면 고압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하러 갈 때마다 스튜디오에 완벽한 몸매의 선생님이 계시면 나는 그 시간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워진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저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고, 저렇게 되려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거나 세 번은 다시 태어나야 할 것만 같은 그 느낌이 싫다. 먹은 것도 없는데 체한 것 같은 기분.


운동을 시작하려고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스튜디오, 요가원 등에 등록하러 갈 때면 트레이너나 상담실장은 내 몸의 모난 곳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가 많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몸을 지적당하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거북목과 라운드 숄더가 심하다느니, 무릎과 발목의 소리가 심각하다느니.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 몸을 탓하고 미워하게 된다. 대부분은 그렇게 미워만 하다가, 정해진 기간의 운동 프로그램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막상 등록하고 나서 그 문제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고, 회원권 판매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그분들의 내 몸에 대한 관심은 불현듯 사라진다. 그러다 보니 운동도, 내 몸의 지속적인 움직임도 좋아해 본 적이 드물다. 운동은 언제나 내게 원망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필라테스 선생님이 영업을 위한 멘트를 던지지 않고, 내 몸이 뭐가 문제라고 꼬집어 지적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번만큼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연스레 내 몸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예전엔 내 몸의 어디를 고쳐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바빴는데, 굳이 지적받지 않으니 그런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운동 자체를 즐기게 된다. 무언가 숙제를 끝내거나 과업을 수행하는 기분이 아니어서 지속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비용을 아끼고자 2:1 필라테스를 등록했는데, 재미있게도 나와 함께 수업하게 된 회원분은 나와 성씨만 다르고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 자세를 잡아줄 때 각각의 회원을 호명하려면 반드시 "이OO님" "최OO님"이라고 성까지 붙여 불러야만 한다. 첫날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둘 다 폭소를 했다. 이OO님은 목소리가 우렁차고 긍정적인 분이라 함께 운동하면 힘도 나고 왠지 충전되는 느낌이다. 서로 잘 소화해내는 자세, 혹은 잘 안 되는 자세도 달라서 굳이 서로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짐볼을 배에 깔고 엎드리는 자세를 하면서 내가 "이거 안 터지나요?" 묻자 스튜디오엔 온통 웃음이 터진다. 그런 모먼트가 새삼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마음에 든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마음에 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마음에 들어온다는 표현이 새삼 예쁘다는 생각도 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에 드는 건 세상에 아주 한정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개인의 취향도,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도, 바운더리도 너무 확고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등록한 필라테스는 오랜만에 내 마음에 든 일이라는 점이 생경하면서도 뿌듯했다. 서로 선을 넘지 않는 관계. 지불한 만큼의 가치 창출. 함께 운동하는 사람과의 에너지 나눔. 모든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래간만에 내가 한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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