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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Mar 10. 2020

옆집 냄새는 나를 부끄럽게 했다

“옆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엄마는 옆집 냄새에 자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냄새는 굳이 표현하자면 오래된 밑반찬 냄새, 냉장고 냄새, 구질한 삶의 냄새 같은 것이었다. 나도 집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간혹 인지했음에도, 엄마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낼 때면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쩔 땐 “그래? 무슨 냄새?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일축하기도 하고, “환기를 잘 못 하나보지.”라고 두둔하기도 했다가, 도대체 내가 왜 옆집 냄새의 유무 혹은 원인에 대해 감싸고 있는지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끊어지곤 했는데, 이는 내가 끝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었다. 옆집 냄새는 ‘빈곤’에 대해 내 안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와 수치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옆집에서 가난의 냄새가 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결국엔 그 집과 인접한 우리 집의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일명 ‘냄새가 나는 집’과 같은 층, 같은 다세대 주택, 아니 더 크게는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함축했다. 엄마가 이야기하는 ‘옆집 냄새’는 곧 우리 집의 계급성, 이 사회에서의 내 위치성 같은 것을 상기시키므로 줄곧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내가 사는 이 집과 동네가 매우 지겹다고 느꼈고, 내가 살아온 공간을 병적으로 떠나고 싶어 했다. 꽤 추진력이 있는 나는 엄마아빠에게 틈만 나면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니자고 했고, 실제로 파주 신도시에 지어지고 있던 한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끝내 그 집으로 이사 가지 않았다. 입주가 시작되기 직전에 약간의 이윤을 남기고 팔았다. 당시도 지금도 모든 가족 구성원의 생활반경이 서울에 있던 이유도 있고, 태어나 처음으로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경기도’가 찍히는 그 사실 자체에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꼈던 서울토박이 아빠 탓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20대 내내, 그전까지 평생을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사를 직접 추진한 건 애교에 속했다. 부모님에게 별 희한한 거짓말을 하고 수개월 간 집에서 나와 살기도 했고, 도저히 서울에서는 취직이나 결혼을 하지 않고는 독립할 길이 없다는 생각에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반드시 독립하고자 유학을 떠난 건 아니지만, 서울이라는 공간 내에선 내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좌절도 분명 큰 부분을 차지했다. 장학금을 받고 유학생활을 하는 건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일이었으며, 내가 나고 자란 땅에 뿌리내린 본래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전혀 모르는 곳에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 ‘새 시작’을 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었다. 그러나 2년간의 유학을 통해 이방인이라는 신분이 얼마나 취약한지, 살아온 곳을 떠난다는 사실이 주는 잠시간의 행복은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 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서울에 다시 돌아오고 나서 얼마간은 ‘귀향’에서 오는 안정감으로 인해 본가살이에 나름 만족하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들려온 ‘옆집 냄새’라는 단어는 내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던 하나의 스위치를 톡 하고 건드리고 말았다. 옆집이 이사 온 건 꽤나 최근이었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내가 유학 가있던 시절(16년에서 18년 사이)에 입주했을 것이다. 4인 가족이라는 것 외에 옆집의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 엄마의 말에 의하면(그리고 외면하려 하긴 했지만 꽤 예민한 내 후각적 경험에 의거하면) 가끔 냄새가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집이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가난이 다른 무엇보다도 '냄새'라는 감각으로 기민하게 표상되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포인트는, 같은 냄새를 두고 엄마는 혐오감을 느꼈지만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이 둘은 무슨 차이일까? 마사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오염에 대한 공포’라는 말로 혐오라는 감정을 적절히 표현했다. 옆집 냄새는 엄마를 두렵게 했고, 혐오를 느끼게 했다. 스무살 무렵 갓 상경한 엄마, 아침마다 샤워를 하기 위해 공동 화장실에 줄을 서야 했던 열악한 아현동 하숙집, 거기에서 언니들과 함께 살던 시절, 결혼 이후에도 늘 부족했던 생활, 유한하고 결핍됐던 물질적 조건, 그 지리멸렬한 물리적 상징이 일상에서 후각적으로 구현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 반응이었다.


반면 내가 느낀 수치심은 이보다는 한 단계 위의 차원에 있다. 우리 집이 가장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에 나는 너무나도 어렸기에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내가 느끼는 건 오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빈곤이라는 나와 내 가족의 ‘대과거’에 대해 느끼는 총체적 감정이다. 즉, 나에게 빈곤은 실존이라기보다는 상징이다. 그건 부모님이 어릴 적 내 앞에서 보인 유약함, 미성숙함, 현실에 치인 낭만, 눈물 같은 것들이다. 종종 사람들이 날 쳐다보던 이상한 눈초리, 내가 후천적으로 획득한 문화 계급에 부합하지 않지만 문득문득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던 내 언행, 이에 대한 유무형의 지적 등으로 투영된다.


스무 살 넘어 대학 사회에 진입했을 때, 캠퍼스 안팎에서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으로 이 사회의 주류로 구성된 조직에 속하게 되었을 때, 졸업 후 소위 기득권으로 여겨지는 집단에 한 발 한 발 들어갈 때마다 수치심은 한 단계씩 진화했다. 씨줄날줄처럼 내 긴장감을 조여 오는 기제들은 아주 많았다. 대학 때 내가 발화하는 방식을 통해 나의 계급적 배경을 꿰뚫어보던 복수전공 교수, “너한테 말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교수님이 그 때 네가 한 말 듣고 좀 그렇다더라. 그런데 그 교수님은 학생들의 언행까지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분이라 괜찮아.”라고 전해주던 친구의 말, 미국 여행 중 큰아빠네 집에서 저녁을 먹던 도중, 내 밥 먹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지적하던 큰아빠,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고받는 그들만의 규범과 방식을 지키지 않았다고 눈치를 주던 미국 친척들, 내가 쓰는 영어 문법의 오류를 지적하며 “이런 기초적인 것도 틀리냐”고 면박을 주던 키 크고 허옇고 멀끔하던 스무 살 때 부자 애인, 그 이후로 만난 다른 애인들과 돈 문제로 시도 때도 없이 다투던 기억, 20대 중반에 가까워지면서 또래집단에서 서로 미묘하게 엇갈리던 소비패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장소의 차이,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의 격차 등이 내 눈엔 열 탐지기 카메라 속 등고선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내가 진입하고자 하는 사회의 구성원과 나는 어쩌면 조금 다르게 자랐구나, 나는 준거집단에 부합하지 않는 배경을 지녔을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세계와 나는 결이 약간 다르구나 하는 것들을 조금씩 강력하게 깨달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를 촘촘하게 감시했다. 심지어 양치질할 때 컵을 쓰는지의 여부까지 눈치를 봤다. 나는 어릴 때부터 컵을 사용하지 않는 양치질에 익숙해져 있는데, ‘곱게 자란 사람들은 양치질 할 때 반드시 컵을 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을 이용하는 내 양치질 행위가 갑자기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도 부랴부랴 컵을 구해다 써봤지만 오히려 불편했고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더 이상 쓰지도 않는 이 컵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내 책장에 애매하게 꽂혀 있다. 이러한 일상 검열은 자아를 넘어 내밀한 타인에게까지 확장되곤 했다.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애인이 신발을 벗고 의자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거나 다리를 떠는 게 정말이지 싫었다. 미학적 끽연이 아닌 습관적 흡연을 하는 것도 싫어했다. 미국 큰아빠에게 식습관을 지적받은 뒤로 집에서 엄마아빠가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내는 것도 내 귀에 너무나 거슬렸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 엄마가 입을 좀 덜 벌렸으면 했다. 이른바 ‘교양 없는 행동’을 나나 주변사람이 체화하고 있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면 몸부림을 쳤다.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의 수치스러움을 건드리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옆집 냄새는 내가 스무 살 무렵부터 느끼기 시작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느끼는 ‘상징적 빈곤’에 대한 수치심을 상기시킨다. 너스바움이 말했듯 수치심은 취약한 자아의 반영, ‘유아기적 나르시시즘’에 대한 동경에서 나온다. 또한 이 수치심은 완전무결한 개인에 대한 동경, 실패를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기질과도 결합해 작동한다. 나는 완벽한 자아를 꿈꾸는 사람이다. 나에 대한 스탠다드가 너무 높아 실수나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내 불완전함, 불안함, 유약함을 누구에게 들킬까봐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남의 시선에 굴하지 않는 척 쿨하게 행동하고, 강자에게는 유독 지지 않으려 하고, 안 웃긴데 웃지 않으려는 등 여러 방어기제를 산처럼 쌓아왔다.


예전에 언젠가 빈곤에 대한 글을 한 편 써야겠다고 다짐만 하고는 6~7년이 지나도록 쓰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더욱 단단히 뒷받침한다. 내 안에는 계급적 요인과 관련된 미세한 상처들이 아주 많고,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투쟁중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충분히 정리되지 못한 화두는 명료한 언어로 녹여낼 수 없다. 교차하는 수많은 정체성 중 인종, 젠더 등 여타 카테고리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계급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하기가 두렵다. 이것은 내가 아직 삶의 구조 속에 내재한 이러한 긴장을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스바움은 이 책에서 부드럽게 말한다. 수치심은 강요된 것이라고. 잘못된 것은 내가 아니라 사회구조라고. 문제는 낙인이라고.


전 사회를 통틀어 가장 낙인으로 가득 찬 생활 조건 가운데 하나는 빈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나태하고, 부도덕하며, 가치가 낮은 존재로 여겨지면서 일방적으로 기피당하는 존재가 되고 수치심을 겪는다. 미국의 경우는 특히 그럴 가능성이 크다. 빈곤이 게으름이나 의지력 부족으로 널리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프먼의 연구는 가난한 사람이 실업 상태에 있거나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경우, 빈곤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 낙인이 심해진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낙인은 가족 안에서도 일어난다. 아이들이 취학 연령에 이르면, 아이들의 부 또는 빈곤은 입는 옷, 점심 도시락의 음식, 어투, 방과 후 친구들을 데려가는 집 등 무수한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애덤 스미스가 설득력 있게 주장한 것처럼 빈곤은 절대적인 측면을 갖는다. 즉 [가난한 사람에게는] 음식, 주거, 의료와 같은 생활 필수품이 결여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빈곤은 비교적이고 상대적인 측면을 지닌다. 그래서 충분히 먹고 지낼 곳이 있어도 사회적으로 괜찮은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품목의 일부가 결여한 경우가 있다. 스미스가 살았던 사회에서 아마포 셔츠와 가죽신이 이런 품목이었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마 개인용 컴퓨터가 그러할 것이다. (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pp. 512-513)


너스바움의 이 문장은 빈곤의 미묘한 지점들을 잘 포착해낸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상대적으로 결여된 경우는 찾아보면 수도 없이 많다. 앞에서 언급한 교양 있는 말투와 식문화부터 시작해 현실에 방해받지 않고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권리, 점심시간에 집에서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이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코로나가 터지자 당분간 푹 쉴 수 있겠다고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권리 등이다.


다만 이쯤에서 한번쯤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위에서 묘사한 것은 모두 내가 지닌 수많은 특권들을 과소평가한 다소 편향된 서술임을 인정한다. 나는 한국에서도 모든 자본과 기회가 모인 수도 서울에 살고, 대학교육을 받았으며, 비장애인이자 이성애자로서 어떤 범주에서는 주류에 속한다. 내가 기소유한 특권에 대한 무지를 계속해서 일깨워준 몇몇 사람 덕분에 이러한 감수성은 다행히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그러나 모든 분석은 맥락 속에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나는 내 준거집단에 대한 상대적 비교라는 맥락에서 서술한 것이므로 이 부분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게다가 교차하는 수많은 억압 요소들 중 어느 하나만이 우위에 있거나 선행관계가 아니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빈곤과 수치심에 대한 내 사유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이 책을 덮고 난 이 순간까지도 나는 내 계급성에 중첩된 요소들을 용감하게 직시하고 파헤치지 못한다. 이는 나와 내 가족이 지나온 과거만을 돌아보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지닌 욕망을 현현히 투영하는 일이며, 따라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제도권과 주류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검열을 멈출 수 없다. 이 작업은 결코 단번에 이뤄질 수 없다. 앞으로 살면서 계속 천천히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고찰할 부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설정한 이상에 거꾸로 끌려다니면서 맹목적으로 살지 않고 이렇게 꾸준하게 감수성을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 오래 전부터 목표로 해오던 소재로 마침내 글 한 편을 완성했다는 사실 자체에 뿌듯함을 느낀다.


인간 사회는 완벽함의 폭압, 정상성의 허구로 사람을 구획화하고, 약자에게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압제당하는 집단에 수치심을 강요한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단단한 줄기를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너스바움이 주장하는 ‘인간에 대한 정치관’에 더욱 눈길이 간다. 즉,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 퇴화하는 몸을 갖고 있으며, 누구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를 지닌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매력적인 정치철학자는 인간의 유한성, 동물성을 포용하고 우리 존재의 연약함을 끌어안는 자유주의를 말한다. 존중받아야 할 인간의 범주를 전 인류로 확장하자고 용감하게 주장한다. 정치학, 철학, 법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타당한 이론을 마술처럼 자아내는 이 책을 통해 나는 진한 위로를 받았다. 언젠가 내 인생의 한 때를 지배했던 혐오와 수치심을 연료 삼아 더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닌 맥락을 초월하지는 못해도 명확히 응시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더 많이 공부하고, 명료하게 알고, 놀라울 만큼 똑똑해질 것이다.



2020.03.08.

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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