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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Apr 11. 2020

나는 왜 PC방 알바를 부끄러워 했나

계급 이야기

계급의 자욱을 필사적으로 지우려고 하는 건 내 인생의 숙제였다. 스무살 때 잠시 친하게 지낸 밝고 따사로운 언니가 있었다. 세상엔 아픔의 그림자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어쩌면 앞으로도 그것을 경험할 가능성이 낮은, 죄없고 명랑한 언니였다. 편의상 설탕이라고 부르자.

당시 나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맞이해 PC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이유는 좀 특이하지만 간단했다. 게임광이라서든지, 컴퓨터 중독이어서가 아니었다. 9시부터 3시까지라는 근무시간으로 인해 방학에도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들일 수 있었고, 내가 가져온 신문(무려 PC방 카운터에서 신문을!)을 읽을 수 있고, 컴퓨터로 언제든 자료 검색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PC방 전경을 종종 CCTV로 지켜보고 있던 사장님은 나에게 카운터에서 신문은 좀 읽지 말아 달라며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 나는 그가 경험한 바 없는 종류의 알바생이었다.

간만에 밥을 먹으려고 만난 설탕언니는 나에게 방학인데 뭐하냐고 물었다. 알바를 한다고 했다. 무슨 알바냐고 물었는데 내가 1초 정도 망설이다가 PC방에서 일한다고 하니 그 순간 반사적으로 나오는 설탕언니의 표정이 오묘했다. 풉, 인지 헉, 인지 알 수 없는, 조소 같기도 한 웃음. 처음 보는 웃음의 온도였다. 약간 차가워진 것도 같다. '조금 다른 세계에 사네.' 그런 느낌의 표정이 스쳤다.

설탕언니의 웃음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부끄러울 일이 없는데 부끄러웠다. PC방 알바가 별 건가? 게다가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 경험을 열심히 해석하고 있었다. 매일 PC방에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을 인류학적으로 관찰하고 일기에 썼다. 사람은 누구나 눈빛을 여러 번 마주하다보면 이야기가 쌓이는 법이다. 그것이 말해지든 말해지지 않든 말이다. 그리고 PC방이라는 공간은 초등학생 남자애들과 50대 아저씨가 유대감을 쌓는 기묘한 곳이었다. 자신감이 조금 결여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 손님이 그 중에서도 게임을 제일 잘 했고 이질적인 무리 사이에서 왕대접을 받았다. 온라인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현실의 지위와는 관련이 없는 점은 내겐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대상화, 타자화를 피하고자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쓰려고 했는데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위에 묘사한 경험은 나를 끊임없이 자기검열하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데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 일이나,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도 극도로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사는 동네, 가족에 대한 이야기, 가치관이나 생활신조, 식탁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각도나 음식을 먹는 속도, 밥 먹을 때 내는 소리, 양치질하는 패턴, 심지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양새까지도 다 계급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계급은 여전히 내가 가장 해방되지 못했으며 조심스러워 하는 영역이다. 내 머릿속엔 이와 유사한 인생의 순간들이 수 백 개쯤은 있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영사기 속 필름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날씨와 입은 옷과 표정과 감정까지도. 한 때는 점이었던 것들이 그나마 선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큰 그림이 되어가는 중이다. 나는 이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나만의 언어를 개발하는 중이다. 언젠가 내 언어로 나의 경험을, 아니 이 세계의 풍경을 유려하게 풀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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