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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Feb 02. 2021

좋은 위로란

좋은 위로란 첫째, 상대방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의 마음을 돌볼 수 있겠는가. 위로란 본질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보살펴주는 일이고, 이러한 보살핌(care)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작업이다. 대화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그의 몸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감정이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나와 상대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힘이 드는 이유와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였다면 괜찮았을 텐데, 저 정도면 쉽지 하면서 쉽게 비교하거나 판단하지 말 것. 일례로 나는 예민한 사람인지라 여타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수많은 경우에 상처를 받곤 한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고민하지도 않았을 문제를 가지고 머리로 씨름을 하니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가 나와 같은 이슈로 힘들지 않다는 이유로 나의 고통을 낮게 평가한다면 매우 부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힘듦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반대로 나는 쏟아지는 업무량,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 그로 인한 육체적 피로, 혹은 온갖 사회적 권력관계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라든지, 큰일을 앞둔 상황에서의 중압감은 전반적으로 잘 견뎌내는 편이다. 여기에는 내 성장배경과도 연관되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원체 나는 스스로를 심하게 푸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계급 상승 욕구와 완벽주의 성향이 맞물려 탄생한 나의 성격 중 하나다. 나는 나 스스로가 무언가를 '못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못한다고 말할 바엔 그 시간에 요령을 익혀서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니까. 능력이 안 된다는 변명, 혹은 그것을 계발할 의지가 없는 게으름은 용납하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자아성취를 위한 길을 알아서 닦아온 나에게 '못한다, 어렵다'는 말은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에 외고 준비와 같은 상승 코스를 밟지 않고, 입시를 위한 훈련에 전념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된 나에게 공부량에 비해 시간은 미치도록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잠을 안 자기 시작했다. (잠은 안 자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성적을 6등급에서 1등급으로 끌어올렸다. 돌아보니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산 증인이 여기에 있잖아(!!)와 같은 꼰대 마인드였구나 싶다. 일본어로는 이를 정확하게 지칭하는 '우에까라메센'(上から目線: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는 표현이 있다. 처음 이 표현을 들었을 때 종종 내가 보이는 태도를 지칭하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는데, 여전히 나는 그 자각 지점으로부터 많이 성장하지 못했다. 인지 다음은 시정 단계인데 거기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러한 나의 마인드는 청년들에게 왜 '노오력'하지 않느냐는 386세대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유사한 맥락에서 솔직히 나는 '피곤하다'는 말을 잘 체감하지 못한다. 나는 감정의 영역에서는 쫄보에다가 세상 여린 사람이지만, 사회적 성과에 대해서는 매우 현실적이어서 그런 쪽으로는 잘 징징대지 않는 편이다. 나는 일 욕심이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내가 싫어하는 일은 조금이라도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살면서 좋아하는 일들만 골라서 해왔기도 하지만, 그래서인지 내게 주어지는 일들을 대부분 금세 좋아해 버리게 되는 편이기도 하다. (그게 내 탐구열, 성취욕을 충족시켜주는 주제와 성격의 일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그런 일을 할 때면 나는 철저한 계획, 환상적인 시간관리 능력 하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끝내곤 한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대해 잘 불평하지 않는다.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조건이 있다면 즉시 해결한다. 그러고는 어떠한 핑계도 대지 않고 묵묵히 해낸다. 그 과정에서 피곤함은? 그냥...... '견딘다'. 


하지만 누구나 나 같지는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무리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모든 순간 그 업무를 사랑스럽게 느낄 수는 없다. 그리고 돌발변수가 많은 성격의 일을 한다거나, 자기가 컨트롤할 수 없는 업무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피곤함은 말 그대로 피곤함이다. 거기엔 고생했다는 한마디 말, 피곤함을 배가시킬 화제는 다음을 위해 참고 삼킬 줄 아는 타이밍의 감수성, 참으로 군더더기 없고 시의적절한 위로 밖엔 답이 없다. 회사에서 극강의 '피곤함'을 자주 경험하는 파트너와 함께 살아가려면 내가 길러야 하는 능력이다. 



셋째, 스스로를 잘 위로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나를 구원하는 법을 잘 모른다. 이미 문제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망가졌을 때 필요한 게 구원이다. 그러나 구원은 너무나 큰 문제이므로 이러한 구제불능 상태로 치닫기 전에 작은 위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돼서 나는 종종 스스로를 궁지에 몰고 가는 경향이 있었다. 


이 정도면 잘하고 있어, 그런 종류의 믿음이 나에게는 잘 없다. 최고가 아니면 타협하지 못한다. 내가 어느 수준 이상 퀄리티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자신감 부재는 넷플릭스 <넥스트 인 패션>을 보면서 느낀 바로는 아시아인으로서 문화적으로 길러지는 특성인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여성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속성인 듯한데, 여성들은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깎아내리도록 훈육되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조건의 기준은 남자보다 훨씬 높다. 심지어 거기에다가 자신을 드러내기보단 감추라고 말하는 모순된 요구까지 받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꿋꿋하게 빛내온 여자들이 갖게 된 공통적인 특성이다. 


칭찬에 유독 박한 사회에서 위로는 어불성설이다. '너만 힘드냐, 다 힘들어' 같은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데 위로는 얼마나 한가한 노래 가사 같은 이야기인가. 우리 모두는 위로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우선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법부터 알아야 남을 위로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나는 나를 아기자기하게 잘 위로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남에게 위로받길 바라기 전에, 우선 스스로를 위로하는 한 문장부터 써보기. 하루가 끝날 때 나에게 위로의 말을 한 마디씩 해주기. 그다음엔 사랑하는 사람을 잘 위로하는 사람이 되기. 차근차근 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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