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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Jul 30. 2021

서늘한 여름밤

1.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채로 여름밤이 찾아왔다. 너무 많은 걸 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법이라는 걸 지난 두 계절 동안 배웠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갔고 적응 기간을 거쳤다. 조금 많이 뛰었고 일찍 일어났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살과 근육이 붙는 동안 머리와 가슴은 텅 비어갔다. 너무 많이 울었던 탓인지 눈물샘은 말라버렸다. 더운 밤인데도 어쩐지 마음이 서늘하다.


2. 자아가 부유하기 시작한다. 생각이 모아지지 않고 흩어지길 반복한다. 너무나 긴 시간 압제 속에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나를 잃은 걸까?


3. 불 꺼진 어린이대공원. 금요일 밤 간단한 러닝 후 귀가하면서, 폐장시간을 지나 소등된 공원을 걸었다. 갑작스레 스무 살 언저리의 내가 소환된다. 문득, 이 밤거리에서만 4명의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기억이 났다. 한 명은 꺼진 관람차 안에서, 한 명은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 그네를 타다가, 한 명은 벤치에 앉아서, 한 명은 걷다가, 좋아한다 말하거나 사귀자고 꼬시거나 반지를 주었다. 귀엽고 순수하고 그것보다 자주 무모했던 어린 날들.


4. 최근 자신감이 너무 상실된 상태다. 제도권에 들어가면 그다음부턴 모든 게 수월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불행감은 뭔지 모르겠다. 지난 시간 언어를 잃었고 발언권을 빼앗긴 탓일까. 생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까.


5. 일과 삶을 분리하기. 글을 쓰기. 부디 글을 쓰자. 한 번 손을 놓아버리면 점점 더 어려워진다. 파편화된 생각이라도 잘 모아서 받아 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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