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란 과대평가된 개념이야(Popularity is overrated)."
<어디 갔어, 버나뎃>에 나오는 대사다. 이 문장은 짧고 간결하지만 내 마음을 강렬하게 이끄는 구석이 있었다. 영화에서 버나뎃은 촉망받는 건축가였으나 돌연 은퇴한 뒤 20년을 창작 활동을 하지 않고 지낸다. 자기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채 남편과 이웃에게 편집증 환자로 몰리고, 오로지 똑똑한 딸('비')만이 그녀의 빛나는 면모를 알아준다. 어느 날 비는 이웃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모녀 파자마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 딸은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 따위 파티 가고 싶지도 않아."라고 말하며 엄마의 마음을 달래려 한다. 그때 버나뎃은 말한다. "인기란 너무 과평가되어있어."
인기. 그것은 솜사탕 같은 것이다. 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예쁘고 뭉글뭉글하고 달콤하니까 다들 좋아하는 척하는 것. 어릴 때부터 솜사탕은 물론이거니와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왜인지 솜사탕을 가져야 한다는 유혹만은 거부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인기를 대하는 태도와도 유사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갖고는 싶은 것. 먹기는 싫지만 손에 들고 있고는 싶은 것.
나는 기질적으로 인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외향적인 성격도 아닌 데다가 남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평온하고 고요한 생활을 지키는 것이 내 삶에선 다른 무엇보다도 최우선 순위다. 남에게 휩쓸려 다니는 건 딱 질색이다. 그런데 인기인의 삶이란 어떤가?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불려 다녀야 하고, 주목받아야 하고, 응답해줘야 할 것이 아주 많다. 한 마디로 고요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부터 나는 내가 소속된 공동체의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곤 했다. 나 같은 인간이 타인들의 호감을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욕심 많고 명민한 사람은 쉽게 미움받기 마련이다. 무슨 수로 나를 좋아하게 만들 것인가? 소위 '웃상'도 아니거니와, 성격적으로 넉살이 좋거나 살갑지도 않은 내가 말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조건을 타고났는데도 나는 사랑받고 싶어 했다. 불가능한 과제는 언제나 나를 버겁게 했다.
지금 있는 회사에서도 그렇다. 막내 생활은 가만히만 있어도 모든 것이 충분히 어지럽고 힘든데 나는 사람들의 사랑까지 받고 싶어 했다. 그러니 사소한 지적을 받아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건 이렇게 하지 말고 저렇게 해 줘요."와 같은 단순한 조언조차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여기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나? 선배들이 이걸로 인해 날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이와 같은 쓸데없는 걱정들이 매일매일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삽질이었다.
여자라는 성별이 주는 이중의 압박은 덤이다. 조직에서 인기 있는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진 능력을 충분히 '만회'할 만한 백치미나 애교가 겸비되어야 했다. 살가움은 여자들에게 과잉 부과된 덕목으로, 행동거지를 옥죄기에 충분하다. 아저씨들의 농담을 센스 있게 살려서 웃어넘기거나 상사의 아무 말에 공감해주는 일, 거기다가 친절하기까지 한 '여'직원 행세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다시금 결심한다. 안 웃길 때는 웃지 않기. 죄송하다, 고맙다는 말 불필요하게 남발하지 않기.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 하지도 말고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알기. 발이 넓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불려 다니고 모두를 잘 챙기는 동기 보면서 부러워하지 말기(어차피 내 그릇은 여기까지다. 내 삶에 사람 한 명만 더 추가돼도 피곤하다). 살면서 같은 걸 몇 번을 결심하는지 모르겠으나 이번만큼은 진지하다. 쓸데없이 힘 빼는 일을 줄이고 싶다. 그것만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이제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