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를 읽으며 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회
요즘도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고 있다. 이슬아의 글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부러울 정도의 솔직함이다. 부모를 이름으로 호명하고, 과거와 현재에 대해 꾸밈없이 드러낸다. 현실을 각색한 거라고 작가는 말하곤 하지만, 그건 이슬아의 문장 중 유일하게 믿음이 안 가는 부분이다. 글쓰기란 자고로 발가벗겨지는 작업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글이 많이 쏟아졌던 때는 나의 '해방기'라 불리는 2014년이다. 물질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여유가 넘쳤던 애인과 연애하면서 나는 충분히 자유로웠다. 내가 지닌 콤플렉스를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문장화할 수 있는 소재, 사유할 거리가 넘쳐났다. 길을 걷거나 햇살만 한 번 비추어도 그 안에 문장들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내 삶엔 온갖 비밀이 많아졌다. 아직은 한 사람에게 전념할 각오도 결심도 없던 나는 얼마 못 가 새로운 이(들)에게 흔들렸고, 그러다 잘못된 관계에 발을 들였다. 이전 애인과는 어정쩡하게 헤어진 채로 떳떳하지 못한 2년을 보내면서 내 마음 근육은 심히 약해졌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20대 초반부터 파멸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몰랐다.
나는 애정관계에서 쉽게 감정을 착취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법을 알았다. 애인은 친구나 지인보다 조종하기 쉬운 상대였다. 나는 그들에게 지식과 관능을 취하면서 내 욕심을 채웠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추락의 욕구'에 시달렸다. 안정된 것을 망가뜨리고 싶은 욕망. 그것은 아주 달콤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계급 상승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공부와 성공이 삶의 1순위였던 나에게 파멸은 오히려 간절했다. 내 삶엔 망가뜨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내가 쌓아 올린 것을 망가뜨릴 것인가? 내 미래를 파괴할 것인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살아가기 위한 물질적 토대는 어떻게든 세워야 했고, 상승 욕구를 채우려면 사회적 성공을 거머쥐어야 했으니 손에 쥔 건 인간과 사랑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 관계를 곧잘 망가뜨렸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배신하고 상처 입히는 것보다 쉬운 파멸은 없었다. 술도 하나의 묘약으로 취기는 파멸과 한쌍이었다.
이 모든 걸 해석할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상엔 그림, 음악, 춤 등으로 다양하게 살풀이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나는 글쓰기 외에는 재능이 없었다. 주기적으로 글을 써서 내 안의 독소를 뿜어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글에는 제약이 많다. 우선 금기가 많은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특히 내 삶은 금기로 가득해졌고 응어리를 적절히 해소할 수 없었다. 화병이 깊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직장에 매어있을 것인가? 나는 회사라는 네임택으로 불리고 싶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나는 오롯이 나일뿐이고 직장인으로 사는 것은 내가 경제적 자유를 얻을 때까지다. 어떠한 꼬리표 없이도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부지런히 투자를 공부할 것이다. 그러면서 종종 이렇게 글을 쓸 것이다. 내 삶의 금기가 걷어내 졌을 때, 그래서 할 말이 아주 아주 많아졌을 때, 그때 내가 글로 풀어내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