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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Mar 03. 2022

삶의 조도 재설정

형광등 불빛이 심적으로 힘들게 할 때

요즘 내가 빠져있는 유튜버 이연의 (라이프) 나이트 루틴 영상을 보았다. 그녀가 제시한 첫 번째 루틴은 조도와 습도를 알맞게 조정하라는 이야기였다. 저녁 9시 정도부터는 거실 불은 아예 점등한 상태로 방 안의 정해진 장소에 위치한, 조도가 낮은 조명들만 켜놓는다고 했다. "밤에 형광등을 켜놓으면 심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영상을 끄고 나서도 이 말이 묘하게 계속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몰랐던 내 병명을 알게 된 기분, 내 상태를 설명할 하나의 언어를 찾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조명 하나까지도 사람을 괴롭게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형광등 불빛이 심적으로 힘들다'는 그녀의 담백한 고백을 듣는데 뭔가 속에서 왈칵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무슨 그깟 형광등이 사람 마음을 힘들게 한다고 그래,라고 하는 반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예민한 사람으로서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안다. 나 또한 형광 불빛 아래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우리 집 방과 거실 등을 모두 LED 등으로 바꿔달 때도 나는 극구 싫다고 했었다. 형광색이란 어쩐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색감이었다. 미세조절이 불가능한, 형광빛이 주는 조도는 겨우겨우 살아낸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요컨대 형광등이란 억지로 어둠을 밝혀서 사람 몸을 굴러가게 만드는 장치다. 깊이 자는 사람을 무리하게 깨워서 사무실 책상에 앉혀놓는, 해가 졌는데도 건재한 척 계속 일하게 만드는. 


불빛만이 문제인가? 코로나 격리 와중에 느낀 건데, 나는 자주 울리는 전화벨 소리, 문자 알림, 주기적으로 카톡 확인을 하는 것 따위도 힘들어 한다. 전반적으로 소음에는 다 민감하다. 여러 소리가 겹쳐서 나는 건 끔찍하게 싫다(예를 들면 TV와 팟캐스트를 동시에 트는 것). 오디오 성능이 안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것(휴대폰 내장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건 최악이다)은 일종의 죄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싫어하는 것들은 적당히만 나열하도록 하겠다. 


아니 도대체, 그간 나는 심적으로 힘든 일들을 얼마나 지속하고 있었던 걸까. 


바깥에서라면 말도 섞지 않았을, 눈조차 안 마주쳤을 사람들과 매일같이 부대끼며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사무실에 사다 놓는 각티슈 크기(정사각형인지 직사각형인지), 간식 세팅 방식까지도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선배가 바로 옆자리에 있고, 내 동기가 '언니가 더 안 아픈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할 만큼 무뚝뚝하고 거의 감정에 대한 몰이해에 가까운 선배에게 일을 배웠고 현재도 같은 팀에서 가장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다. 같은 사무실 선배는 쌍팔년도에나 들어봤을 법한 예절(막내니까 제일 먼저 출근해서 사무실 세팅을 하라는 둥)을 내게 종종 가르친다. 성향이나 가치관이 1도 맞지 않는 친구들과 매일 밥을 먹고 교류한다. 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심적으로 힘들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새로 시작한 심리상담에서 선생님과 2차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됐다. 지금의 직장을 얻고 나서 나의 스트레스와 불안이 극에 달했다는 것. 그녀가 준 조언은 '바운더리를 잘 설정하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업무가 아닌 것 같은 일을 부당하게 지시할 때는 할 수 없다고 정확하게 되받아치라는 것이다. 물론 선생님은 미국인이라 한국의 조직문화에서 이게 통할지는 모르겠다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당연하게도 한국의 직장에서는 '업무'와 '업무가 아닌 것' 사이의 선을 긋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특히 신입으로서 회사에서 내게 주어진 결정권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하기에 정당한 '업무'처럼 보이지 않는 소위 허드렛일을 할 때는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처리해야겠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아무런 감정과 기대를 담지 않고, 잘하려는 의지도 없고 그냥 해야 되니까 하는 것. 양치질하듯이 말이다. 모든 일에 정성을 들일 필요는 없다. 


연금대출도 받아야 하고, 월급으로 주담대도 갚아야 하니 당분간은 직장에 속박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는 이상 심적으로 무리가 되는 일은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도살장 끌려가듯이 몸을 옮기고,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꾸역꾸역 12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안에서 나를 너무 던져버리지 않으려면 내 삶의 조도와 습도를 조정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 신혼집으로 이사하면 내 방, 내 공간을 온전한 휴식이 가능한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 

2. 혼자 오롯이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공동생활수칙 만들기, 시간표 짜기, '방해금지 모드' 설정하기)

3. 일주일에 하루 반나절은 나와의 데이트 시간으로 쓰고 싶다. (좋아하는 카페를 찾아 외출을 해도 좋고, 산책을 해도 좋고, 방 안에 틀어박혀 멍 때려도 좋다)

4. 힘이 세지고 튼튼해져서 웬만한 것에는 타격을 덜 받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를테면 검도 같은 것을 배워서 실제로 물리적인 힘이 세지고 싶다)

5. 1년 차 신입을 벗어나 2년 차에 가까워질 쯤에는 내 삶의 비중을 더 높이고 싶다. 

6. 회사가 아닌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는 커뮤니티에 소속되고 좋은 사람들을 사귀고 싶다. (봉사활동을 하거나, 독서모임을 나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장 내가 우리 회사 출근 시간을 바꿀 수는 없고, 집과 사무실의 형광등을 뜯어서 교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점심시간, 퇴근 후 보내는 시간/공간 등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정할 수는 있다. 그렇게 잘 쉬고 나면, 평일에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 놓여서 감당해야 하는 심적 부담도 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게 타격이 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이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나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건 나중에 내게 회사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존재 증명이 가능한가의 문제다. 언제 일을 그만둬도 두렵지 않을 만큼 내 취향, 내 재능만큼은 꾸준히 갈고닦고 싶다. 변화에 민감하고, 내가 관심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면서 토끼굴을 파둬야 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사람은 하나의 커뮤니티에서 인정이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실패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 꼴같잖은 조직 없이도 빛나니까 말이다. 나는 내 눈앞에 주어진 어떠한 조도도 견뎌낼 수 있는, 그 자체로 빛나는 하나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고 싶다. 그 불을 내 마음속 작은 방 안에 고요히 켜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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