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았던 신호들
젊었을 땐 내 몸이 건강한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바쁘게 사는 것이 곧 나를 증명하는 일이라 여겼고, 그 안에 쏟아붓는 열정이 전부라고 믿었다.
쉴 틈 없이 달려가던 시간 속에서,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흘려보냈다. 그 신호는 분명히 있었지만, 나는 들을 줄 몰랐다.
나이가 들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건강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돌봐야 하는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걸. 이 깨달음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온 게 아니다. 크고 작은 경험들이 조용히 쌓이고 겹쳐지며, 삶의 언어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요즘 나는 자주 ‘끙’ 소리를 낸다. 어릴 적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그 소리. 이제는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세월은 이토록 조용히 깊숙하게 스며든다. 그 소리를 낼 때마다 속삭이듯 들리는 내면의 목소리는 이렇게 외친다.
“지금 여기에 내가 있어. 아직도 잘살고 있어. 괜찮아, 힘내.”
나는 이제야, 내 몸이 나에게 말을 거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 목소리에 응답하듯, 걸음을 늦추고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머문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어떤 이는 병을 통해, 또 어떤 이는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혹은 평범한 일상 속 조용한 틈새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삶의 조각은 모두 다르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들을 준비가 된 사람만이 그 신호를 삶의 문장으로 바꿀 수 있을 뿐이다.
내 나이 마흔을 갓 넘겼을 무렵, 나는 유방 상피내암 진단을 받았다. 조직검사를 위한 절제였지만, 결국 오른쪽 가슴을 완전히 도려내야 했다. 그것은 단지 의료적 절차만은 아니었다. 내 몸의 일부를 잃고, 불균형한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암 환자라는 현실 앞에 위축되곤 했다.
정기검진은 언제나 두려움과 초조함을 안고 찾아왔다. 차가운 대기실, 삐삐 거리는 기계음,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을 설치던 밤. 그런 나를 안심시켜 준 건 담당 의사의 따뜻한 눈빛이었다.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말투, 설명하는 태도 하나하나에 스며든 배려가 나의 얼어붙은 마음을 천천히 녹였다.
그 순간 처음 알았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것. 한 사람의 다정한 태도가 또 다른 사람의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지를.
그래서였을까. 그 선생님이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상보다 더 깊은 서운함이 밀려왔다. 단지 진료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분은 내게 “나도 누군가에게 온기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심어준 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의지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받았던 온기를 다시 세상에 건네고 싶다. 그 따뜻함이 또 다른 이의 불안을 조용히 감싸주기를, 나는 오늘도 조용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