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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갑상선 정기검진일이다.

우리 나이도 이제 그럴 때야

by 나비

오늘은 갑상선 정기검진일이다. 6개월마다 받는 검사인데, 벌써 또 그 시간이 다가왔다니 놀랍기만 하다. 내 시간은 마치 중력의 가속도를 따라 흐르는 것처럼,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린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다.


검진 예약 문자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마음은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예약 문자가 불러온 불안은 그 틈을 타고 스며들고, 쓸데없는 걱정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전날 밤이면 어김없이 악몽이 찾아온다.


검진을 앞두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단순한 불안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암 진단을 받았던 날의 절망, 검사 때마다 되살아나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 수술 후의 고통, 그리고 병원에서 눈을 감으셨던 친정어머니의 마지막 모습까지. 이 모든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며 내 어깨를 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떨리는 마음속에서도 기대를 품는다. 괜찮을 거야, 건강해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병원을 향한다. 예약은 오후 1시 30분이지만, 나는 늘 조금 일찍 집을 나선다. 일찍 가면 주차도 수월하고,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는다.


대기실에서 결과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내 앞쪽 의자앞으로 오셨다. 빈 의자가 있었지만, 그분은 의자 대신 복도 바닥에 앉으셨다. 마치 병원 복도가 집 안 방바닥이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게 등을 의자에 기대셨다. 나는 할머니께서 뭘 하시나 궁금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보니, 할머니는 그냥 한 쪽 무릎을 올리고 그 위에 손을 얹고 앉아 계셨다.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볼 때 우리도 소파아래 앉아 의자에 기대는 모습이 떠올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는 중절모를 쓴 백발의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외과 진료실로 가면서 할머니를 향해 “왜 바닥에 앉냐”며 계속 타박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게 편하다며 손을 흔드셨다.


잠시 후, 화장기 없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띤 중년 여인이 다가왔다.


“이모, 괜찮으셔요?”


“아이고, 뭐 하러 여기까지 왔냐.”


“집이 근처예요. 결과는 나왔어요?”


할아버지가 진료실에서 나오며 “약만 잘 챙겨 먹으면 돼. 괜찮다”라고 말하자, 세 사람의 얼굴에 안도와 기쁨이 번졌다. 여인은 바닥에 앉아 있던 할머니를 부축하며 버스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고, 할머니는 “아이고, 아이고” 하며 손사래를 치셨다. 세 사람은 그렇게 계단 아래로 사라졌고,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조금 후 또 다른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간호사에게 왜 아직 이름을 부르지 않느냐며 다소 날카롭게 따졌다. 간호사는 미소를 잃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의 이름을 확인했다. 잠시 후 이름이 불렸지만 아주머니는 혈압을 재는 중이라 놀란 눈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이름이 계속 반복되자, 아저씨는 간호사에게 부인의 상황을 설명했다. 간호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혈압 체크 끝나면 바로 들어오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내 이름이 불렸다. 마치 달리기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안내한 자리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앉아 있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피검사와 초음파 결과를 보니, 약을 바꿔야겠습니다. 지금 복용 중인 씬지록신 25μg으로는 호르몬이 충분히 보충되지 않아서, 50μg으로 증량해야 해요. 수술로 갑상선 기능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약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몸의 균형이 맞습니다.”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상황을 내가 어쩔 수는 없었다. 의사의 설명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검진일인 6개월 후를 기약하며 병원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니 며칠 전 화물차 문에 부딪혀 갈비뼈에 금이 간 남편이 소파에 누워 있다. 병원에서 본 부부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며 코끝이 찡해진 나는 조심스레 오늘 병원에서 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어쩌겠냐. 나이 들수록 병원이랑 친해지는 건 당연한 거지. 우리 나이도 이제 그럴 때야.”


그 말엔 ‘그리 슬퍼하지 마라’, ‘그리 괴로워하지 마라’는 무언의 위로가 담겨 있었다.


그래,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가기에 체력은 이미 예전 같지 않다. 차라리 흘러가는 물살에 힘을 뺀 채 몸을 맡겨 보는 것도 지혜겠지. 중년을 넘어 노년을 향해 가는 우리에게 조심할 건 갈수록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서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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