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파랑새에게

놓아줄게

by 나비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1908년에 발표한 희곡 〈파랑새〉는 이렇게 속삭인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삶 속에 있다.


나는 그동안 나의 파랑새를 찾아 헤매며 욕심을 부렸다. 돌이켜보면, 내가 좇던 새는 이미 짜인 틀 속에 박힌 행복에 대한 동경일 뿐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보여주기 위한 완벽함들. 그래서 지난 세월을 더듬어보면, 실수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내 모습만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런 내게 독일 작가 슈테판 셰퍼의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 속 글귀는 큰 울림이 된다.


내가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음 생에서는 실수를 더 많이 하고 싶다. 더는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고 더 느긋하게 지낼 것이다. 지금까지 보다 조금 더 정신 나간 상태로, 많은 일을 심각하지 않게 여길 것이다....이하 중략...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죽기 얼마 전에 쓴 글이다.


어쩌면 나는 온전히 나를 위해 살아왔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스스로를 더 옥죄어왔는지도 모른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완벽한 모습이 타인의 인정에 저당 잡힌 채로 말이다.


아이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욕을 하거나 이기적이거나 싸워서 나를 지치게 할 때마다,


‘내가 무능한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고개를 들고,

‘그래, 요즘 아이들이 원래 이런 거지’ 하는 합리화가 끼어들며,

‘도대체 저 아이의 부모는 어떻게 키운 걸까’ 하는 원망이 내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이제는 그 목소리들을 내려놓으려 한다. 보이는 것들에 붙들린 나의 평가들을 놓아주려 한다. 세상은 내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질 때 비로소 달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이찬혁의 노래 〈돌아버렸어〉처럼, 내가 움켜쥔 줄이 썩어가기 전에 내가 먼저 놓아버리려 한다. 아니, 이미 그 줄이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실수투성이의 나를 받아들이고, 다름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순간—

어쩌면 내 안에 오래전부터 잠들어 있던 파랑새가, 드디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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