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졸업앨범 촬영과 교직원 단체사진을 찍었다

몸은 어른 마음은 어린이

by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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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장 비슷한 차림으로 현관을 나서려는데,

구두가 문제였다.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구두에는 군데군데 곰팡이가 송송 올라와 있었다.

급히 물티슈로 닦아내고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다행히 스타킹은 가방에 챙겨두었기에, 학교에 가서 신기로 했다.


날씨는 제법 ‘가을가을’했다.

복도, 교실, 운동장 쪽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고 수업을 시작했는데,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바람을 타고 교실로 들어왔다.


6학년 아이들과 사진사 아저씨의 소박한 실랑이.

“이쪽으로 와요!”

“거기 모여 있지 말고요.”

“웃으세요, 그렇게 하지 말고—”

애처롭고 분주한 아저씨의 목소리에 수업은 자꾸 끊기고,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켤까 고민하는 사이

마침 쉬는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우리 반 아이들이 창문 밖으로 머리를 쏙쏙 내밀고 구경을 시작했다.

“언니 예뻐요!”, “와! 멋지다!”

소리 높여 외치는 아이들 사이로

한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다가왔다.

“선생님… 저도 내년에 예쁜 옷 입고, 저 언니들처럼 사진 찍고 싶은데…

옷 살 돈이 없어요. 어떡하죠.”

‘1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냐...’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저

“걱정 마, 내년 일은 내년에 걱정해라.”

라고 말하자, 아이는 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고, 운동장 소란도 사라지자

조용한 교실엔 가을 햇살과 함께 도덕 수업이 이어졌다.

‘갈등’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이야기하던 중

창가 너머 보이는 등나무를 가리켰다.


“봐라, 저게 등나무야.

기둥이 저렇게 얽혀 굽어 있는 게 보이지?

칡나무도 있는데… 아, 저기엔 없구나.”


칡나무만 있었어도 설명이 더 완벽했을 텐데.

나는 속으로 아쉬워하며

영상 자료로 두 나무가 서로 얽힌 모습을 띄웠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꼬여 얽히는 모습에서 유래한 단어가 바로 '갈등'이야.

칡나무의 ‘갈(葛)’과 등나무의 ‘등(藤)’이 만나서 ‘갈등’이 되는 거야.”

아이들은 “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자매와의 갈등, 친구와의 갈등 이야기도 조심스레 꺼낸다.


그때, 창밖에 선생님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 깜빡했다. 단체사진이 있었지.

창문을 열어놓고 수업하다 보면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불쑥 끼어든다.

“선생님, 중간놀이시간이에요!”

쉬는 시간만큼은 칼같이 챙기는 아이들 덕에

나는 부랴부랴 수업을 멈추고

가방에서 아침에 못 신은 스타킹을 꺼내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구두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현관 앞에서 신어보니——아뿔싸. 굽이 생각보다 높았다.

그래, 사진만 찍고 오면 되니까.

문제는 사진 촬영 장소가 잔디밭 한가운데라는 것.

가느다란 굽이 푹푹 빠진다. 잘 자란 풀들이 뽑혀 나올까 괜히 미안해진다.


열두 명쯤 되는 선생님들이 둥그렇게 모여
사진사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웃고, 어깨를 낮추고, 자세를 맞춘다.


그 와중에 내 시선은
사진사 아저씨의 어깨너머,
저 멀리 운동장 모서리를 향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 학생처럼.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벚나무에서 떨어진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잎들이

노랗고 황톳빛으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마치 밤사이 “우리, 오늘은 모두 내려가자.”
뜻을 모은 듯, 운동장 모서리는 온통 낙엽밭이 되어 있었다.


‘아, 저기서 아이들과 낙엽놀이하면 참 좋겠다.’


그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여기 보세요~ 웃어주세요!”

사진사 아저씨의 외침에, 선생님들도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 한순간, 말 잘 듣는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무 사이에서 푸드덕—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선생님들의 청량한 웃음소리를
부리에 살짝 물고는,

하루 종일 사진 찍느라 고생한 사진사 아저씨를 응원하듯

파란 가을 하늘 위로 높이, 높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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