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업
그는 나를 구원하러 온 것인가, 스트레스를 주러 온 것인가.
둘 다 맞다. 그는 동전의 양면처럼 나를 구원하면서 동시에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교직 25년 차이지만, 그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얼어붙는다. 마치 빙산의 일각이 되어 나를 덮치는 차가운 무게 앞에 선 듯하다. 그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들도 있다. 아마 그들은 그 일에 특화되었거나, 혹은 그 긴장을 즐기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가 불편하다. 그리고 아마 그와 헤어질 때까지, 이 불편한 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와의 만남이 끝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는 늘 구원군을 데리고 다닌다. 그를 감싸고 분석하며 옹호해 주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 나는 늘 한 발 물러서고, 때로는 굴복당한 기분이 든다.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고,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도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그가 바로 그런 존재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 트라우마가 있었던 거 아니냐”라고. 아마 그랬을 것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나를 향해 날카로운 지적을 퍼부었다. 목소리가 너무 크다, 내용이 부실하다, 주제가 불분명하다, 활동이 어울리지 않는다, 시간 조절이 엉망이다…. 그들은 나의 미숙함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그를 대하는 내 태도에 대해 “수고했다”라고 말해주는 이들도 생겼다. 나도 한결 너그러워졌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를 분석하고, 구조화하며, 그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활동을 고안한다. 하지만 정작 그를 무대에 올리는 순간, 나는 그와 나를 향한 수많은 시선 속에 다시 긴장한다. 그를 위해 흘린 땀과 시간은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라 위로하지만, 그를 향한 스트레스는 쉽게 옅어지지 않는다.
그는 나를 성장시키는 스트레스다. 나는 여전히 그를 힘들어 하면서, 동시에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