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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들의 터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by 자유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마친 뒤 복도로 나서는데, 맞은편 계단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길이라 무심히 지나치려 했지만, 아이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선생님, 음악실에 벌이 두 마리나 있어요!”

아이들은 4학년 남자 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벌을 없애 달라고 성화였다. ‘정말 음악실에 벌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호기심이 생겨 아이들과 함께 그쪽으로 향했다.

유리창에 한 마리, 창과 창 사이의 나무 틈에도 한 마리. 두 벌은 색깔이 달라 서로 다른 종처럼 보였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데, 복도 끝에서 4학년 선생님이 에프킬라와 파리채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교실에 있던 아이들도 뒤를 따랐다. 마치 장군을 따르는 어린 병사들처럼.

나는 음악실 문을 잡아주며 선생님이 들어가실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은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외쳤다.

“선생님, 꼭 잡아야 해요!”

음악실 안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문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아이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발끝을 들었다. 마치 큰일이 벌어지는 걸 지켜보는 구경꾼들처럼 탄성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제발, 이번엔 꼭 잡혀라.”

복도 유리창 너머로 선생님이 보였다. 운동장 쪽 창문 앞에서 에프킬라를 연신 뿌려대며 파리채를 휘두르고 있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벌이 파닥거리는 순간, 파리채가 한 번 더 내리쳤다. 하지만 벌은 끈질기게 날개를 퍼덕였다. 잠시 후 행정실 사무관님과 실장님이 해충 제거약을 들고 올라왔다.

음악실 문이 열리자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 들어갔다. 실내는 에프킬라 냄새로 가득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벌을 잡는 선생님을 구경하며 연신 웃고 떠들었다.

한쪽에선 벌과 사투를 벌이는 선생님, 한쪽에선 그 모습을 보며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 틈에 있다 보니 벌써 5교시 알림 종이 들려왔다.

“얘들아, 수업 시작이야. 어서 가자.”

한바탕 소란이 수업 종으로 마무리됐다.

“어제 119에서 옥상 벌집을 제거했대요. 아직 남은 벌이 있나 봐요.”

3학년 여학생이 인상을 찌푸리며 귀띔했다.


그 말을 듣자 예전에 살던 집이 떠올랐다. 연식이 꽤 오래된 낡은 아파트였지만 주변에 온갖 나무들과 꽃, 풀밭이 무성해 마치 수목원 한 귀퉁이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한 번은 슈퍼를 다녀오면서 베란다 앞쪽으로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창틀 아래 대롱거리는 이상한 회색빛 덩어리가 눈에 들어와 자세히 살펴봤었다. 하얀 찰흙 같기도 한 것이 울퉁불퉁하게 생겨 살갗에 돌기가 돋았다. 게다가 그 주변에서 윙윙거리는 말벌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없는 비늘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봤을 때 조그만 덩어리가 갈수록 덩치를 부풀렸다. 그 생경한 모습은 달리 징그럽다는 말 외는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 말벌집은 결국 지나가던 어른의 신고로 다행히 제거되었다.

“콜록콜록!”

음악실에서 벌 두 마리를 잡으려고 에프킬라를 뿌리던 4학년 선생님이 기침을 하며 나왔다. 처음 들어갈 때 보였던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랜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 온 패잔병처럼 얼굴은 핼쑥했지만 손에는 파리채로 잡은 벌의 잔해가 들려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곧 5교시 시작종이 울렸고 점심시간을 흥미진진하게 보낸 아이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교실로 돌아갔다.


말벌은 왜 이렇게 건물 외벽에 집을 지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원래 말벌은 숲 속 나무 구멍이나 바위틈, 지붕 밑 같은 곳에 둥지를 튼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화와 개발로 숲이 줄어들면서, 그들의 집터도 함께 사라졌다. 결국 말벌은 자신들이 살던 환경과 비슷한 조건을 찾아 인간이 지은 건물 외벽으로 내려온 것이다.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고, 온기가 머무는 벽면, 그리고 먹이가 가까운 인간의 공간. 그곳은 말벌에게 새로운 숲이 되었다.


인간이 그들의 서식지를 밀어내니, 말벌은 인간의 영역으로 밀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시에 말벌이 집을 많이 짓는다는 건 결국 ‘우리가 그들의 터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완벽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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