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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이 뭐길래

by 자유


‘꼬마 농부 학교’에서 수확한 땅콩을 교담 선생님이 삶아 각 교실로 보내주셨다. 외형을 보니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그 제멋대로의 모습이 꼭 사람들 같아서 괜히 웃음이 났다.


“땅콩 먹고 싶은 사람은 와서 먹어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순식간에 땅콩이 든 접시를 빙 둘러싸더니, 껍질을 까며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접시 옆에는 이미 껍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래도 이 녀석들이 알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겠지’ 생각하며 교탁으로 다가갔는데——

웬걸.

아이들은 땅콩을 다 먹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내 책상 위엔 아이들이 남겨놓은 땅콩 껍질 무덤이 덩그러니 쌓여 있었고, 내 화도 그 무덤의 높이만큼 서서히 치솟기 시작했다.


결국 손을 씻고 온 아이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로 돌아가 앉는 모습을 보자, 내 안에서 무언가가 펑하고 터졌다.

“방금 여기서 땅콩 먹은 아이들, 다 나와 봐!”

순간 교실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마스크에 가려진 내 얼굴은, 마치 찜질방 한증막에서 막 걸어 나온 사람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이들은 평소와는 다른 내 목소리의 낮은 톤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서로 눈치를 주고받다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왔다.

“이게 뭐지?”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너희가 먹은 땅콩 껍질들이야. 이렇게 쌓아놓고 가면 어떡하니? 자기가 깐 껍질은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정적 속에서 내 목소리만 교실을 가득 메웠다. 이후로 약 5분 동안, 내 잔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화를 내면 낼수록 이상하게 더 화가 치밀었다. 마치 불에 기름을 붓듯, 내 속은 점점 더 뜨겁게 타올랐다.

“제가 여기 책상 위에 껍질을 올려놨더니, 아이들도 따라서 올린 것 같아요.”

11월 매니저 역할을 맡은 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않니?’

내 속에서 답답함이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자기가 먹은 껍질은 자기가 깨끗이 치워라. 지금까지 내가 너희에게 뭘 가르쳤는지 모르겠다. 정말… 실망이야.”

내 말에 교실 안은 조용해졌다. 사실 그냥 “치워라” 하고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굳이 나는 “실망이다”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치우겠지’ 하는 기대가 컸던 만큼, 그 기대가 어긋난 순간 화도 덩달아 커졌던 모양이다.


11월의 첫 월요일을 땅콩껍질에 화를 내며 보냈지만, 비 온 뒤 땅이 더 단단해지듯, 오늘 일도 더 좋은 일이 생기려는 전조였다고—그렇게 믿어 보기로 했다.


간신히 화를 눌러 담은 나는 복도로 나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은 영하권이라더니, 바람이 차도 너무 차다. 얼굴로 스며드는 찬 공기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교실로 돌아가니, 책상 위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나는 다시 평정심을 찾고 다음 수업을 시작했다. 의기소침했던 아이들도 다시 활기를 되찾으며 훨씬 공손한 태도로 수업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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