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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선생님!

H야, 미안하다. 그리고 일기 과제를 제출해 줘서 고맙다

by 자유

우리 반엔 늘 “죄송해요, 선생님!”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아이가 있다. 일단 그 아이 이름을 H라고 하겠다.


오늘도 일기 검사를 하고 있는데, H가 갑자기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아, 맞다!” 하는 소리를 내며 후다닥 자기 자리로 달려갔다. 그러더니 가방을 뒤적여 일기를 꺼내 들고는 허겁지겁 내게 달려왔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깜빡 잊고 일기를 내지 않았어요.”

“...음, 그건 죄송할 일이 아니야. 이럴 땐 이렇게 말해도 돼. ‘선생님, 깜빡 잊고 지금 냅니다! 오늘은 잊지 않고 일기를 써왔어요. 저 잘했죠?’ 하고 말이야.”


사실 아침에 나는 속으로 ‘H가 또 일기를 안 냈네. 그럼 그렇지…’ 하며 그냥 지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일기를 꺼내는 순간, 아침에 그 아이를 너무 쉽게 단정 지어서 미안했고 순간의 편견이 부끄럽기도 했다.


‘H야, 미안하다. 그리고 일기 과제를 제출해 줘서 고맙다.’


H의 일기에는 주말에 형과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와서 잤다’라고만 쓰는 아이도 있는데, 가끔이지만 이렇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써내는 아이라면, 괜히 앞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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