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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아파트

올겨울도 잘 지내거라

by 자유

오늘 ‘꼬마 농부 학교’ 시간에 농부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들과 함께 곤충 아파트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곤충들이 겨울을 안전하게 날 수 있도록 지어 주는 작은 집이다.

미리 준비해 온 나무토막을 조별로 나누어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리자,

제법 근사한 곤충 아파트가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빈틈을 채워 넣으며

서로 재잘거리다 깔깔대고, 다시 또 장난을 치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까지 곤충 아파트의 여백에 고스란히 스며드는 듯했다.

겨울이 오면 곤충들은 아이들이 만든 그 집에

친구와 가족, 사랑하는 이를 데리고 입주해

다시 새로운 생명을 틔워내겠지.


꼬마 농부 학교 시간도 12월 첫 주면 끝난다고 하니 벌써 시원섭섭하다.

한 아이가 “내년에도 꼬마 농부 학교 해요?”라고 묻자

농부 선생님은 “제가 잘리지만 않으면 해야죠!” 하고 껄껄 웃으셨다.

올해 수확한 수박이 너무 작았다며

내년에는 자기 머리통만 한 수박을 꼭 키워보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활동 사진을 찍다 잠시 멈춰 서서

봄부터 지금까지의 사진을 주욱 훑어보았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몇 달의 풍경―

4월, 땅을 파고 고랑을 만들며 상추 씨앗을 뿌리고 옥수수 모종을 심던 아이들.

5월에는 고추, 참외, 토마토, 수박, 땅콩 모종을 심고

달의 끝자락엔 상추를 뜯어 집으로 가져가며

“집에서 고기를 싸 먹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하던 얼굴들.

6월에는 허브와 라벤더, 블루세이지를 심었고

7월에는 옥수수를 수확해 교실에서 삶아 나눠 먹었다.

9월에는 국화와 아스타국화, 배추, 쪽파, 콜라비, 비트를 심었다.

돌이켜보니, 정말 많은 것을 심고, 길러내고, 수확한 한 해였다.


친환경 농법으로 풀과 함께 식물이 자라도록 했더니

여름방학을 지나 돌아왔을 때는

어른 키만큼 풀이 자라 숲을 이뤄 놀랐다.

그때 학교 관사에 사는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일주일 내내 풀을 베어내느라 고생하셨던 기억도 떠올랐다.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엔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하는 계절만큼

아이들 자신도 무럭무럭 자라온 모습이 담겨 있었다.

교실 수업에서 얻는 배움과

자연 속 체험에서 스며드는 삶의 감각이 어우러진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생기 있어 보인다.


특히 오늘 텃밭에서 발견한 목화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3월쯤 심었던 한 아이의 목화씨가 죽은 듯 보이던 시절을 지나

어느새 보들보들한 하얀 솜을 틔워낸 것이다.

갓 싹이 나올 때 거의 말라죽어가던 목화를

우리가 텃밭으로 옮겨 심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회생이었다.

아이들은 목화솜을 발견하자 탄성을 질렀고

하얀 솜털을 서로 만져보며 생명의 환희를 온전히 느꼈을 것이다.

나 또한 그 광경에 손뼉을 쳤다.

죽은 줄 알았던 목화가 꿋꿋하게 계절을 견디고

자기 존재를 다시 드러냈다는 것이 고맙고 예뻤다.

목화를 심었던 아이의 얼굴도

그 솜털처럼 환하게 피어올랐다.


우리는 청명한 늦가을 햇살을 듬뿍 받으며 텃밭을 정리했다.

그리고 1년 동안 텃밭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 준 곤충들을 위해

곤충 아파트 짓기를 마무리한 뒤,

천천히 교실로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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