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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꽃보다 예쁘다

아이야

by 자유

“어머니, 제 잠바가 못에 걸려 찢어졌거든요. 보충 수업 끝나고 태권도 학원 가기 전에 집에 들르면 꿰매주실 수 있으세요?”

복도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통화가 교실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아뇨, 그게 아니고요. 학원 끝나고 가 아니라…”

아이는 뭔가를 계속 설명하고 있었고, 통화를 마치고 교실로 들어오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가 제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며 속상해하는 표정이었다.


수학 보충 수업이 시작되고, 나는 아이의 얼굴에서 잠시도 마음이 편치 않은 기색을 읽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느라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어?”

내가 조심스레 묻자, 아이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문제를 풀다가요… 예전처럼 제 방식대로 계산하려고 하면 잘 안 돼요.”

“그래. 그럼 일단 선생님 방식대로 풀어보고, 나중에 네 방식이 더 편하면 다시 시도해도 돼.”

아이는 여러 번 자기 방식으로 풀어보다 오답이 나오자, 결국 풀이 과정을 차근차근 다시 적기 시작했다.

그러자 막혔던 문제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빨간 동그라미가 늘어날수록 아이의 입꼬리도 천천히 올라갔다.


보충 수업이 끝난 뒤, 나는 아이의 잠바를 살펴보았다. 소매가 네모나게 찢어져 솜이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건 그냥 둘 수가 없겠다. 일단 임시로 테이프를 붙여보자.”

아이가 먼저 붙여보려 했지만 계속 떨어져서 실패했다고 했다.

혼자 해결해보려 했던 마음이 기특해서, 나는 조심스레 찢어진 부분을 임시 봉합해 주었다.

“와… 선생님은 진짜 다르네요.”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래. 집에 갈 때까지는 잠바를 가방에 넣어 두고. 그런데 너, 참 대단하다. 이 정도면 대부분 새로 사달라고 할 텐데 너는 꿰매달라고 하네.”

아이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전 늘 이렇게 했거든요.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아까 엄마에게 조금 퉁명스럽게 말하더라. 깜짝 놀랐어.”

아이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저도 깊이 뉘우치고 있어요. 집에 가면 사과드릴게요.”


그 순간 나는, 이 아이의 마음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찢어진 잠바 한 벌을 대하는 태도에서조차 그 품성이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아이들을 서둘러 어른으로 만들려 해도
‘아이다움’이라는 결은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다는 것.


오늘 나는 파란 가을하늘 같은 아이를 눈앞에서 보았다. 심성도, 말투도, 행동 하나까지도 가을빛처럼 투명했다. 아이들의 마음은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는 걸 그 아이가 조용히 보여주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오래전부터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사실 늘 교실 한가운데, 아이들 곁에서 천천히 날고 있었다는 걸——오늘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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