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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이 뭐라고

선생님, 오늘 실과 시간은 재미있었어요!

by 자유

실과 전담 시간에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한 우리 반 아이들은 이제 쉬는 시간과 중간 놀이, 점심시간까지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털실을 뜬다. 마치 추운 겨울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풍경 같아 바라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가끔은 코를 빠뜨려 구멍이 나거나, 코가 너무 늘어나 모양이 이상하다며 아이들은 내게 종종 다가와 조심스레 바늘과 털실을 내밀곤 한다. 예전에 뜨개질했던 경험 덕분에, 나는 빠진 실을 찾아 다시 연결하고 늘어난 코도 하나씩 빼내 정돈해 준다. 그럴 때마다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엔 작은 감탄이 잔잔히 번진다.

“우와… 선생님, 뜨개질도 잘하시네요.” 아이들의 탄성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살짝 올라가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하지만 그중 한 아이만 유독 뜨개질이 서툴러 울상을 짓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즐겁게 바늘과 털실을 다루는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 나는 자꾸 그 아이를 눈으로 좇았다. 아이는 손에 꼭 쥔 대나무 바늘 두 개를 붙들고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웅얼거리는 아이 목소리엔 누가 들어도 답답함과 속상함, 그리고 막막함이 뒤섞여 있었다.


보다 못한 나는 아이를 교탁 쪽 책상 앞으로 불러 잠깐 앉아보라고 했다.

“뜨개질이 힘드니?”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의 두 눈에 물이 차올랐다.

“이게요… 실이 자꾸 빠지고… 대나무 바늘에 실이 잘 안 끼워져요. 아… 저는 정말 뜨개질이 싫어요. 저하고 안 맞는 것 같아요. 하…”

말끝이 떨리더니, 아이가 결국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휴지를 꺼내 건네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한숨은 멈추지 않았다.

“뜨개질을 안 하면 안 될까요? 그냥 못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이는 속마음을 쏟아놓았다.

“그래. 자기하고 안 맞는 게 있으면 더 하기 싫지. 그리고 아무리 해도 잘 안 되는 날이 있어. 나도 그런 적 있어. 예전에 동학년 선생님들과 방송댄스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나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 동작이 너무 어려우니까 진짜 하기 싫었어. 지금 네 마음이 어떤지 나도 알아. 그럼, 선생님이 조금 도와줘도 될까?”

“네… 근데요. 진짜 전 아무리 해도 안 돼요.”

“그럼, 코를 만든 다음 내가 바늘을 끼우고 실을 빼는 걸 천천히 보여줄게. 한번 볼래?”

“네.”


다른 아이들도 가끔 코가 빠졌다고, 실이 풀렸다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고 말했지만, 그 얼굴엔 실망 대신 웃음이 묻어 있었다. 서툼을 인정하면서도, 배움 자체를 즐기고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달랐다.

“나는 할 수 없어.”라는 결론을 너무 성급히 내려 스스로 작은 벽을 세워 두고는, 그 벽 앞에서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서툰 뜨개질이 마치 자기만의 문제인 양, 다른 친구들은 자기보다 훨씬 잘한다고 믿어 버렸고,
아직 해보지도 않은 가능성까지 미리 닫아버린 마음이 아이를 더 크게 흔들어 놓고 있었다.


“우혁아, 친구들도 다 처음부터 잘하는 건 아니야. 봐라. 저렇게 뜨다가도 구멍이 나서 다시 풀고 뜨잖아.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모르면 물어보고 다시 해 보면 되는 거야.” 내 말을 들은 아이는 어깨힘을 살짝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건넨 뜨개실과 코가 걸린 바늘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았다.

그리고 양손에 힘을 잔뜩 준 채, 코를 하나씩 빼고 실을 돌리며 땀을 흘렸다. 간신히 한 줄을 완성한 뜨개는 분명 ‘성공’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가운데 코를 하나 빼먹어 작은 구멍을 남겼다. 아이의 얼굴에도 다시 울상이 스며들려 했다.


그 순간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럴 땐 미리 실망하지 말고 ‘선생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하면 돼. 그럼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말을 건넨 김에, 나는 바늘을 조심스레 빼내고 가운데 빠진 코로 실을 밀어 넣어 새 코를 만들어 주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들이켜듯 탄성을 삼켰다.

‘아, 다행이다!’


아이는 다시 웃음을 되찾고, 천천히 실을 바늘에 감아 돌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은 여전했지만, 손에 힘을 꾹 주고 실을 돌려 바늘을 코에 넣는 순간마다 아이의 눈빛도 더 또렷해졌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오후 실과 시간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문 앞에 서자마자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선생님, 오늘 실과 시간은 재미있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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