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가까워진 날
학기 초만 해도 아직 어려 보이던 5학년 아이들이 어느새 제법 많이 자랐다. 키가 나보다 한 뼘이나 자란 아이도 있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기르는 아이는 어깨를 훌쩍 넘겨 찰랑거린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웃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마치 비눗방울이 몽글몽글 날아올라 여기저기 떠다니듯,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하루 종일 깔깔대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예전에 “이것 좀 봐, 신기하지?” 하며 친구들을 웃기던 아이는 요즘 수업 중에도 혼자 ‘풋!’ 하고 웃다가 급히 자기 입을 막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웃음의 이유는 대개 사소하다. 짝꿍이 필통을 떨어뜨리다 책상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뜨개질을 잘못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 아이가 울상을 지을 때도 그렇다. 그 표정이 마치 해바라기씨를 양 볼에 가득 담은 햄스터처럼 귀여워서, 아이들은 화를 내는 대신 더 크게 웃어 버린다.
웃음은 전염된다. 한 아이가 웃기 시작하면, 별로 웃기지 않은 이야기에도 아이들은 금세 낄낄대고 우하하 웃다가 “아이고 배야!” 하며 자지러진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맨 뒷자리에 앉아 짝꿍과 함께 수업 시간마다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던 기억이다.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5교시 수학 시간이었고, 식곤증 때문에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던 때였다. 하필 자리는 맨 뒷자리, 짝꿍은 입담 하나는 알아주던 아이였다.
“야, 너 절에 있는 해우소 알아?”
“몰라. 그게 뭐야?”
짝꿍은 약장수라도 된 듯 눈을 반짝이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우소는 절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인데, 너무 깊어서 볼일을 보고 나와 절 입구에 다다를 즈음에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둥, 그래서 박자를 잘 맞춰 그네 타듯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둥—지금 생각해도 수업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꺼낼 담력은 대단했다. 너무 웃겨서 졸음은 단번에 달아났고,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도 함께 남아 있다.
나뭇잎만 굴러가도 웃긴 나이가 되었는지, 지금 우리 반 아이들도 사소한 이야기 하나에 배를 잡고 웃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제 앞으로 웃을 일이 더 많이 남았다고 말해 주며, 고등학생 시절 수학 시간에 딴짓하다 들켰던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똥과 관련된 이야기라 아이들은 이야기 시작부터 웃느라 정신없었다. 웃느라 힘들었는지 얼굴이 빨개진 아이가 쉬는 시간에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참 많으세요.”
“내 나이가 오십이 넘었거든. 파고파도 계속 나오는 게 인생 이야기야.”
내 말에 아이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나는 인생 이야기를 또래 오십대 친구들과 나누는 대신, 초등학생들과 하고 있다. 하루를 함께 보내다 보면, 어떤 순간에는 아이들이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말을 건넬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나와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일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