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다워진 날
아나바다 행사를 했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팔 물건을 하나씩 가져왔고, 학년별로는 직접 만든 물건을 내놓았다. 여기에 ‘푸드마켓’이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6학년은 어묵을, 5학년인 우리는 호빵과 만두를 팔았다.
우리 반은 여기에 수세미를 더 보탰다.
2주 전부터 수세미실과 바늘을 구입해 아이들에게 간단한 뜨개질을 가르쳤다. 예전부터 나는 수세미 뜨기를 배워 설거지할 때 종종 사용해 왔는데, 그 경험이 이렇게 교실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손재주가 있고 속도가 빠른 아이들은 금세 요령을 터득해 수세미를 한두 개씩 뚝딱 만들어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뜨개질이 유난히 힘든 아이도 있었다. 실이 엉키고 코가 빠질 때마다 얼굴에 긴장이 쌓였고, 결국 그 아이에게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꼭 같은 속도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세미가 조금씩 형태를 갖춰 가는 과정을 무척 재미있어했다. 아침 시간, 중간놀이 시간, 점심시간까지 실과 바늘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마치 작은 경쟁이라도 붙은 것처럼, 아나바다 행사 하루 전까지 “하나만 더 만들고 갈게요”라며 아이들은 계속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가격이었다.
수세미 값을 정하는 자리에서 아이들 의견은 엇갈렸다. 내가 “한 개에 500원 정도면 어떨까?”라고 조심스레 묻자,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
“선생님, 이거 엄청 힘들어요.”
“노력한 것도 생각해야죠. 1000원은 받아야 돼요.”
그러다 한 아이가 말했다.
“근데 이건 좀 허접하니까… 이건 300원으로 해도 될 것 같아요.”
아이들은 물건 값이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는 걸, 그날 스스로 배워가고 있었다. 힘들게 뜨개질 한 피로감, 완성도의 차이, 자기들이 쏟아부은 노력의 시간까지 생각한 것이다.
푸드마켓으로 호빵과 만두를 하기로 정한 뒤, 우리는 조를 나누었다.
판매를 맡을 아이들, 계산을 맡을 아이들. 그런데 곧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행사 날, 물건을 사러 다니는 아이들과 음식을 파는 아이들도 나눠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1차와 2차로 역할을 나누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때 민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얼굴은 이미 울상이었다.
“선생님, 그럼 먼저 물건을 사는 아이들이 더 유리한 거 아니에요?”
“2차로 사는 아이들은 사고 싶은 물건이 다 팔려서 못 사면 어떡해요?”
맞는 말이었다.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 아이들의 얼굴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 네 말도 맞아.”
아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 행사의 취지도 같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아나바다 행사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부잖아. 물건이 필요한 사람은 사야겠지. 그리고 푸드마켓을 하자고 한 것도, 사실 너희 모두의 의견이었어.”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먼저 사고, 나중에 사고의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가 정한 이 음식을 어떻게 팔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여전히 고민스러운 얼굴이었다. 그 표정들이 나는 좋았다. 억지로 납득한 얼굴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민이 시작되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행사는 단 하루였지만, 아이들은 그날 ‘공평함’이 늘 같은 모양은 아니라는 것,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사실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어른인 나에게도 여전히 무거운 질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기부’라는 대의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설명이라기보다, 솔직한 호소에 가까웠다. 이 행사가 무엇을 위해 열리는지, 우리가 왜 불편함을 조금씩 감수해야 하는지를 차분히 풀어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가능성도 덧붙였다. 상황에 따라 순서가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먼저 사러 간 친구들이 생각보다 사고 싶은 물건이 없다면, 2차로 가는 아이들과 자리를 바꿔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 말을 하며 나는, 유독 표정이 굳어 있던 민우를 바라보았다. 괜히 더 말하지 않아도, 그 아이의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양해를 구하는 표정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민우에게 이 아나바다 행사는 ‘물건을 사는 즐거운 날’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건 민우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솔직히 말하면 모두 비슷했을 테니까. 나 역시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쩌랴. 모든 바람이 늘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간절히 원하면, 기회는 때로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행사가 시작되기 이십 분 전이었다. 찜기를 설치하다가, 그제야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호빵과 만두가 떠올랐다. 아이들과 함께 급히 가져왔지만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냉동 호빵과 냉동 만두는 생각보다 해동 시간이 꽤 걸린다는 사실이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영양사 선생님이었다. 역시나 해결책은 그분에게 있었다. 급식실에 있는 대형 찜기로 충분히 해동이 가능하다는 말에, 나는 정말로 눈물이 날 뻔했다. 교실 밖에는 이렇게 든든한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더 크게 느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나는 이 상황을 기회로 삼기로 했다.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며, 처음에 정했던 1차·2차 순서를 일부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뜻밖에도 모두 물건을 사러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조금 전까지의 걱정과 울상이 무색할 만큼, 얼굴들이 금세 밝아졌다. 강당을 둘러보니, 아이들의 관심은 이미 음식보다 물건 쪽으로 쏠려 있었다. 저마다 친구가 만든 물건을 구경하고, 가격표를 들여다보며 여기저기 몰려다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조금 어긋난 계획 덕분에, 아이들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은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도, 그 틈에서 더 나은 방향이 생긴다는 걸 체득한 순간이었다.
잠시 후 조리사님들이 호빵과 만두가 가득 담긴 큰 쟁반들을 가져다주셨다. 그제야 아이들도 하나둘 자신이 맡은 자리로 돌아와 음식 판매를 시작했다. 물건을 사는 데 잠시 주춤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음식 코너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늘어나자 1차, 2차의 구분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돕겠다며 움직였다. 누군가는 호빵을 담고, 누군가는 돈을 받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잔돈을 건네며 분주하게 오갔다. 그 모습은 어설펐지만 이상하게도 제법 그럴듯했다.
한 아이는 문득 “시식 코너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라며 호빵과 만두를 잘게 잘라 여기저기 놓아두었다. 괜히 앞을 오가던 아이들은 ‘기회는 지금’이라는 듯 나무 포크를 집어 들고 맛을 보기 시작했다. 웃음과 냄새가 함께 번졌다. 만두를 팔던 아이는 집게로 잘못 집는 바람에 만두 옆구리가 터지자, 잠시 고민하더니 그 만두를 덤으로 얹어주었다. 이런 미덕은 어디서 배웠는지... 절로 미소가 번졌다.
행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아이들 쪽에서 갑자기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세미도 완판,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도 모두 팔렸다는 소식이었다. 호빵과 고기만두 역시 이미 다 나갔고, 김치만두만 한 접시 남아 있었다.
고생한 아이들에게 이제 너희가 먹어도 되겠다고 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들었다. 그래도 그냥 먹지는 않았다. 자기들도 사겠다며, 100원에 두 개씩 만두를 사 갔다. 그 모습이 괜히 더 기특해 보였다.
“선생님, 너무너무 맛있어요.”
한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집에서 먹는 만두는 별로였는데 말이죠!”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가 바로 받아쳤다.
“야, 그건 우리가 파는 만두라서 그렇지. 당연한 거 아니냐?”
잠시 숨을 고르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서 먹으니까 더 맛있는 거야.”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그날 남은 것은 김치만두 한 접시뿐이었지만, 아이들 가슴에는 이미 충분한 경험이 자리 잡았다. 사고, 팔고, 나누고, 다시 함께 먹는 일. 그 모든 과정이 어쩌면, 우리가 아나바다를 하는 진짜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나바다 행사를 통해 모아진 돈을 기부함에 넣는 아이들의 얼굴이 유난히 환했다. 마치 새벽녘을 뚫고 얼굴을 드러내는 시뻘건 태양처럼.
그때 한 아이가 내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아까 민우가 우리 물건 홍보를 너무 잘해줘서 다 팔린 거 아세요? 진짜 열심히 홍보했어요!”
그 어떤 말보다 이 말이 가장 감격스러웠다. 행사 직전까지 세상에 혼자 남겨진 아이처럼 힘들어 보이던 민우였다. 그런데 어느새 자기 자리로 돌아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아이는 그렇게, 조용히 제 자리로 되돌아와 있었다.
축제 한마당 같았던 행사가 끝나고, 나는 아이 두 명과 함께 찜기와 쟁반을 들고 탕비실로 향했다. 설거지를 하며 ‘아, 이제 올해 큰 행사는 다 끝났구나’ 하고 크게 숨을 내쉬는데, 뒤에서 우리 반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지금 너무 힘들어 보이세요.”
“그러게. 솔직히 오늘 힘들었어.”
내 말에 아이들은,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며 인사를 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그래, 고맙다."
아이들을 보내고 보충수업이 있는 민우와 교실에 남았다. 힘든 하루 끝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수업이었다. 그래도 민우는 투덜대지 않고 조용히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대견했다. 그러다 결국 머리가 아프다며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피곤해서 반갑게, “그럼, 여기까지 하자.” 하며 일어섰다.
그때 민우가 자기 책상 서랍에서 인형 하나를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어? 이건 인형이구나. 아나바다 행사 때 산 거야?”
“네, 선생님 드리려고요.”
“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민우가 살짝 부끄러운 표정으로 건넨 인형을 받아 드는 순간, 목울대에서 뜨거운 것이 불쑥 밀려 올라왔다. 감동이었다.
“고마워, 민우야.”
“네, 선생님.”
민우가 돌아간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인형을 바라보았다. 민우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인형을 내밀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고 한다.
그런데 어른도 아이의 믿음으로 살아간다.
아니, 어른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