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행복했다!
지난 1년간 가끔 올렸던 교실 이야기를 모아 ‘교단일기 2025’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으로 만들려고 하니, 마지막 마무리글을 쓰지 않은 게 생각나 급히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재작년에 아이들이 종업식 날 만들어준 감동의 윤슬이 여전히 따뜻한 핏속에 자리 잡고 흐르고 있는 듯하다. 작년은 작은 학교로 옮긴 덕에 10명의 5학년 아이들과 1년을 지지고 볶으며 살았다. 개인적인 힘듦과 왕복 두 시간 출퇴근으로 피곤에 젖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소수의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들 덕분에 그 시간들을 견뎌낸 것 같다.
무엇을 쓸까 하다 흐릿해진 기억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두 아이가 살며시 건네주었던 편지를 다시 읽어보며 떠올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남학생 5명, 여학생 5명이었지만 그중 통합학급에 편성된 남학생 1명이 있어서 국어, 수학 시간에는 별도로 수업을 받았다. 학년 초엔 그 아이로 인해 당황스러운 일들이 꽤 있었지만(수업 시간에 돌아다니며 방귀를 뽕뽕 뀐다거나 친구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팔을 꼬집어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했던 일, 실내화를 친구들에게 던지거나 양말을 벗어 교실 바닥 구석에 던지던 일), 4월에 공익보조샘이 와서 한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이들은 1학년부터 함께 자라온 터라 그 상황에 익숙했지만, 나는 솔직히 처음이라 적응하는 데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두 아이가 준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란 부분은 글을 참 잘 쓴다는 것이었다. 1년 동안 담임인 내가 우리 반을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자신들이 성장한 부분을 콕 집어 쓴 게 솔직히 놀라웠다. 일기 쓰기와 독서록 쓰기, 활동 스티커판을 통해 매달 자신의 활동을 확인하면서 좀 더 나아졌거나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게 된 점이 인상 깊었다는 아이도 있었다. 또한 매달 말일에 함께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들이 생경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는 점도 내겐 인상 깊었다. 아이들이 서로 한 달 살이를 통해 힘들거나 즐거웠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서로 칭찬해 주고 싶거나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했던 시간들이다. 처음엔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들이 있어 빙 둘러앉은자리 한가운데 꽃 화분을 놓아두고, 그 꽃을 보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감이 조금씩 녹아내렸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모든 아이들이 백 퍼센트 만족할 수는 없다. 지나고 보면 갈등이 많은 아이들과 잦은 상담을 통해 서로를 더 알아가는 시간도 있었다. 주로 타인에 대한 미움과 소외감, 5년 동안 쌓아 둔 서운함이 5학년이 되면서 한꺼번에 폭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학년 마무리 시간에는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1년간 성장한 시간을 되짚었고, 변화된 모습 속에서 감탄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교사의 모든 것을 보고 자란다. 교사는 아이들이 만나는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다. 더구나 1년을 함께 지낸다는 건 아이들끼리 만들어 가는 문화도 중요하지만, 그 중심에서 축이 되는 교사의 역할이 가장 크다. 교사이기 전에 인간인 나는 늘 그런 책임의식으로 무장하지만, 감정을 지닌 존재이기에 가끔 일희일비했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며칠 전 또 다른 아이가 전화를 했다. 반가운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누르니 아이 특유의 밝고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점심시간이면 급식 후 서로 추위를 피하느라 꽁꽁 팔을 끼우고 교실까지 걸어갔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선생님, 잘 계시죠? 저희 지금 센터에서 점심 먹고 놀다가 선생님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그래, 반갑다. 너희도 겨울방학 잘 보내냐?”
“네, 선생님, 사랑합니다! 알러뷰!”
“그래, 나도 사랑한다!”
누구 목소린지 헷갈릴 정도로 서로 큰 소리를 내는 수화기 저편에서 아이들이 환히 웃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 안심이 된다. 건강한 목소리를 전해줘서 정말 고맙다. 나를 통과한 시간이 너희에게 부디 생각이 자라고 마음이 따뜻한 5학년으로 남아 있길 바란다. 나 역시 너희와 함께한 2025년의 5학년이 참으로 빛나는 시간이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