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은 부자지간
막둥이가 당근마켓을 통해 장패드를 거래하는 중이다. 게임 이벤트로 얻었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발로란트 2024 한정판 장패드다. 작년에 컴퓨터를 중고로 팔아 집에서는 아예 게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판다고 했다.
가족 채팅방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막둥이가 거래하는 방법을 전혀 몰라 형과 누나에게 자세히 물어보는 중인지 남편과 내 폰에 카톡소리가 불이 났다. 남편은 급기야 소리를 무음으로 바꿨고 카톡에서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읽던 나는 계속 바람소리를 내며 웃었다.
착불은 어떻게 하는 건지, 택배는 어디 가서 보내야 하는지, 물건을 보내고 돈을 받는 건지 등등 옥신각신하다, 딸이 답답했는지 막내에게 전화번호를 물었다.
"엄마, 카톡 봤어요?"
"응."
"내가 통화를 했는데, 막내도 그렇고 물건 사려는 애도 똑같이 그냥 잼민이라니깐요.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서 둘한테 일일이 설명했다니까요. 아, 답답해!"
"그랬구나...... 네가 고생이 많다."
"엄마랑 아빠가 막둥이한테 잘 설명해 주고 편의점에 가서 택배 보내는 법도 알려줘요."
"응, 그래. 걱정 마."
전화를 끊고 나서도 단톡방엔 계속 돈은 언제 받는 건지, 돈도 안 받고 그냥 보내도 되냐는 둥 설전 중이었다.
남편도 카톡을 읽다가 거실로 나와 막내에게 물건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박스를 고르고 투명 테이프를 찾아 아들과 길이를 함께 재면서 갑자기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네 할아버지도 예전에 물건 같은 거 빈틈없이 꼼꼼하게 포장하셨어. 나도 네 할아버지께 배운 거야."
"네."
오래간만에 거실에서 두 부자가 머리를 맞대고 꼼지락꼼지락 포장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참을 그렇게 둘이서 두런두런 거리다 아파트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택배는 잘 보냈는지 다시 단톡방에 막내가 미션 성공이라는 글을 올렸다. 큰애와 작은애가 짤막하게 '굿'이라고 보낸다. 막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노래를 부르고 낄낄거리며 휘파람을 불어댄다.
남편은 막내가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섣불리 나서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가 아니라 아빠가 도와야 할 타이밍을 기다린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기다려주고 그것을 해결했을 때 기뻐해주는 모습을 보니 오늘따라 남편이 참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