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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시댁에 잠깐 다녀왔다.

우리 함께 늙어갑니다

by 나비

남편이 시댁에 잠깐 다녀왔다. 시댁은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남편이 대뜸 나에게 봉투를 건넸다. 순간 명절 때 어머니께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시면서 나까지 챙겨주시려고 돈봉투를 찾다 결국 찾지 못했던 일이 기억났다. '아, 그때 주시려던 용돈?' 내심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오만 원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명절 때 음식하느라 고생했다고 주시네."

"괜찮은데, 어머니 쓰시지."

"그래? 그럼, 내가 써도 돼?"

남편은 활짝 웃으며 봉투를 다시 가져갔다. 늘 나를 골리는 재미로 사는 사람처럼 매사 빈틈을 파고드는 남자다. 어느새 희끗한 머리카락이 숲을 이루고 있어 마음 한편이 젖어들었다. 그러다 문득 나도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당신 머리카락도 많이 하얗다. 근데 참 신기하네. 눈썹은 진짜 숯껌댕이야. 눈썹하고 머리카락은 성분이 다르나?"

"흠... 그만 하지. 지금 장비 눈썹 같다고 놀리는 거야?"

"풋!"

그만 입에서 풍선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장비눈썹보다는 약간 덜하지만...... 부조화의 조화다. 머리카락은 하얗고 눈썹은 시커멓고.

"어머니께 고맙다고 전화드릴까?"

"괜찮아. 지금 전화해도 못 받으셔."

일단 남편의 말을 듣기로 하고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감상했다.


그러다 언제부터 어머님이 명절때마다 용돈을 주시기 시작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 요양원에서 근 1년을 계시다 나온 뒤부터가 아닌가 싶었다. 한창 코로나 시기 때 계셨었는데, 요양원 방문도 대기를 타야 했었고 간신히 시간을 내 방문을 해도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되었다. 그때 어머님은 생에 대한 끈을 서서히 놓고 계셨었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더불어 자식들의 지극한 치료 때문이었는지 건강을 회복하셨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때부터 어머님은 조금씩 달라지셨다. 명절 때마다 외며느리인 내가 준비해 간 음식을 아버님과 함께 맛있게 드신 후 내 손에 용돈을 아버님 몰래 쥐어주셨다.


남편이 외출한 뒤, 오늘 전화를 하지 못하면 타이밍을 놓칠 것 같아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받으셨다.

"어머니, 용돈 주셔서 감사해요. 그냥 어머니 쓰시지 저까지 챙기셨어요."

"그때 너한테 주려고 챙겼는데, 너희들 가고 나서 침대밑을 한참 뒤졌어. 봉투가 벽사이에 붙어 있더라고. 그래서 효자손으로 끌어올렸다야. 매번 명절 때마다 고생하는 데 많이 못줘서 미안하다."

"잘 쓸게요."

"그래."

전화를 끊고 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바깥을 바라봤다.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젊었을 땐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극에 달해 결혼생활이 참 힘들었고,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세 명이나 되는 시누이들과 마주하는 것조차 어색하고 불편했었다. 마치 친정이라는 원적교를 떠나 시댁이라는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와 적응하지 못해 떠돌아다니는 학생처럼 늘 겉돌았던 것 같다. 스스로 결계를 치고 시댁과 거리를 두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면 흡수냐 조화냐 둘 중의 하나인데 나는 그 무엇도 아닌 나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지금의 나는 그 시절 시어머니의 나이를 먹었고, 나이를 먹는 동안 겪었던 삶의 조각들이 서서히 퍼즐을 완성해 가는 느낌이다.


이해라는 퍼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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