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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을 생각하다

올 겨울을 잘 보내길 바라며

by 나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산을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뷰 절반은 묘를 품고 있는 산속이다. 겨울이라 나무들이 나뭇잎들을 모두 떨어뜨려서 휑한 것도 있었지만, 작년 태풍으로 쓰러져 방치된 나무들 때문에 동쪽을 향해 있는 묘 두 개가 선명하게 보인다.

가끔 창문 앞에 서서 그쪽을 유심히 살펴보곤 하는 데 사실은 묘보다는 그 주변에 가끔 나타나는 사슴 때문이다.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가 날이 좋으면 모습을 보이곤 한다. 작년 가을에 반찬거리를 사려고 아파트를 나서다 산등성이에서 나뭇잎을 뜯어먹고 있는 사슴 세 마리를 발견한 뒤로 생겨난 습관이기도 했다.

동영상을 찍어 가족단톡방에 올렸었는 데, 아무도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남편은 스마트폰 보는 게 유일한 낙인 사람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큰 애는 바쁘니까, 대학을 다니는 둘째도 뭐 나름 정신없이 사느라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막내는 적어도 엄마가 올린 영상에 하트라도 날려줘야 되지 않는 가?

"엄마!"

늦둥이가 전화를 했다. 옳지, 내가 보낸 영상을 봤구나! 그럼 그렇지. 내심 엄마의 감성을 알아주는 자식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것 같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영상 봤어? 신기하지? 얘들 찍느라 숨도 못 쉬었어. 집이 산옆이라 좋은 점도 있다. 네 친구들한테도 보여줘."

"엄마?"

아들은 내 말엔 맞장구를 치지 않고 엄마만 계속 부르고 있었다.

"응?"

"용돈 보내줘요. 원래 어제 보내주셨어야 했어요. 그래서 10프로 더 얹어서 보내주세요. 알았죠?"

"......"

뭐야, 내가 보낸 영상 보고 리액션하려고 전화한 게 아니라 용돈 달라는 소리였어. 맥이 빠져 조용히 알았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껐다. 아들이라 그런가...... 감성이 전혀 없어. 카톡도 아무도 확인하지 않아 서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겨울이라 그런 지 사슴들은 안보인지 꽤 된다.

먹을 것은 충분할까? 이 추위에 저 산속에서 따뜻하게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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