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주택/유은실>을 읽은 후 남기는 단상
이야기 속 순례 씨의 삶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기억 속 때밀이 아주머니들을 생각나게 했다. 엄마와 단둘이 삼촌집에서 살 때였던가.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목욕탕이 생겼는데, 바로 삼촌집이었다. 그 시절 삼촌은 부자였었나보다.
어린 내게 목욕탕은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였다. 사계절 매일 나오는 따뜻한 물속에 물장구치며 놀았고, 때를 미는 아주머니 두 분이 일을 마치고 점심밥을 먹을 때마다 한두 숟갈 옆에서 얻어 먹었다. 그리고 요구르트까지 덤으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아지랑이처럼 올라온다. 건강한 웃음과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았던 목욕탕 풍경은 중년에 접어든 내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순례 주택에 등장하는 수림이 부모님 모습은 젊은 시절 우리 부부 모습과 너무도 똑같았고, 고급 아파트에서 외할아버지 도움으로 사는 것 또한 비슷해 마치 내 이야기를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물론 수림이 엄마와 아빠처럼 명문대를 나온 것에 상대적 우월감을 갖거나, 사는 곳에 급을 두어 양극화현상에 협조하는 쪽은 아니었다.
집을 장만하는 것도 부모님의 도움을 얻다 보니 남의 돈 귀한 줄 몰랐고,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세상 경험을 통한 여행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 해외여행을 참 많이도 다녔었다. 당시엔 평탄한 삶이 계속될 줄 알았고 미래는 더 밝아질 거라는 환상에 빠져 살았었나보다.
수림이 외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살고 있던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간다. 그리고 수림이 가족은 말 그대로 폭망 하게 되고 순례 씨 도움으로 순례주택에서 살게 된다. 삶을 확 뒤바뀌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이렇게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되듯이, 4년 전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나도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 후 등장한 남편의 느닷없는 실직은 그동안 쌓인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들었고,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남편의 시누이들도 이 소설에서처럼 남편의 무능을 탓하고 외면하는 모습도 정말 똑같았는데 오히려 나는 시누이들에게 공감을 많이 했다. 그만큼 남편이 미웠기때문이다.
순례 씨는 수림이에게 어른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이가 어른이라는 말을 한다. 힘든 일이 생기면 늘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던 과거를 돌아보니 몸뚱이만 어른이었던 나는 이야기속 수림이만도 못한 철부지였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딸 셋에 아들 하나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과잉보살핌에 부족함없이 자란 그가 한창 승승장구해야 할 시기에 나락으로 떨어진 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살까지 생각해봤다고 했다. 4년을 지나 5년차 접어 든 이 상황이 예전보다 썩 나아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편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쓰다보니 아이들 생각이 난다. 당시 큰 애는 대학 신입생, 둘째는 고2, 막내는 초등3학년이었다. 갑자기 패닉상태에 빠진 나와 남편과는 달리 아이들은 오히려 덤덤했다. 특히 큰 애와 둘째는 살다보면 그럴 수 있지 않냐며 자기들은 걱정하지 말고 막내만 잘 챙겨주라고 다 큰 어른처럼 얘기했던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 어쩌면 그 때, 아이들은 수림이처럼 현실적인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자 코끝이 시큰해진다.
"내가 그때 삶을 놓고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건 당신과 아이들때문이었어. 특히 아이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라."
남편의 고해성사같은 말을 들으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이 우리를 살게 하네. 물질적인 풍요는 중요하지 않은 것같아. 진짜 삶이 힘들 때 우리가 선택한 용기있는 행동이 아이들에겐 부모의 진짜 모습으로 다가간 것같아.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된거야. 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