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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눈이 펑펑 내렸다.

안녕, 눈사람

by 나비

오늘 눈이 펑펑 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창가로 몰려들었고, 창문을 열자, 눈송이들이 서로 밀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차가운 눈송이들은 금세 녹아내려 따뜻한 물방울이 되어 창틀에 톡톡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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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나가자는 아이들 합창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잦아들면 나가자, " 하고 뜸을 들였지만, 눈보라는 잠잠해졌다가 다시 거세지는 것을 반복했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얘들아, 나가자! 쉬는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얼른 다녀오자! “


"야 아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잔디 위에 내려앉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공간에서 삼삼오오 짝을 이뤄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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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3학년 아이들도 운동장으로 뛰쳐나오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장갑을 한 아름 자루에 담아 가져오셨다. 아이들은 장갑을 손에 끼고 조그만 눈 덩어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점점 커다란 눈 덩어리를 만들어 갔다. 그 몸짓들은 마치 내린 눈과 함께 춤을 추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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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멋진 설경을 사진으로 담으며 친구들과 공유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눈이 많이 쌓인 곳을 찾아 놀이터 미끄럼틀로 향하는 무리도 보였다.


좀처럼 눈을 볼 수 없는 대한민국 남쪽의 고흥에서는 이 순간이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하얗게 변한 산 중턱에까지 닿았다가 바람에 실려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아이들의 세계는 참 신비롭다. 작은 몸짓 하나에도 감탄하고, 놀라며, 신기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들에게 물들어 가며 나도 모르게 깔깔 웃음을 터뜨리다가 눈물까지 흘렸다. 물론, 찬바람에 눈이 시려서 나온 눈물이었지만….


손가락이 얼얼해지고 온몸에 한기가 느껴질 즈음, 마침 은은한 종소리가 운동장을 두드렸다. 우리는 눈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고 교실로 향했다.


나무 사이를 비추던 햇살이 아쉬운 듯 표정을 감추며 살며시 구름 속으로 숨어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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