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학교를 1년 만에 옮긴 이유는 나 때문이다.

나를 변화시킨 작은 학교/마무리

by 나비
세상의 기준이 자신의 갈망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그때가 바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자신과 맞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자신을 그 사람에게 맞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류시화-


내가 학교를 1년 만에 옮긴 이유는 나 때문이다.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원인이 있었다. 지난 3년간 작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경험한 모든 것이 나를 바꿔 놓았다.


전남에서는 도시에서 8년을 근무하게 되면 그 도시를 나가야 한다. 2020년까지 도시 학교 근무 7년 차 접어들었던 나는 1년을 남기고 과감히 관외로 내신을 냈다. 관외는 도시를 제외한 군과 읍 단위인 곳이다. 약간의 모험을 걸었다고나 할까! 당시 만기자가 아니었기에 2순위까지만 쓸 수 있었다. 다행히 1순위를 쓴 군에 발령이 났지만, 그곳에서 또 가장 거리가 멀었던 면 단위 학교로 가게 됐다. 자가용으로 출퇴근 시간이 3시간 거리인지라, 관사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학교 자체 관사는 1인 거주에 알맞은 평수라 연립관사로 들어갔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막내와 생활해야 해서 편의를 준 것이었다. 숲 속에 들어앉은 연립관사는 멀리서 보면 꽤 멋진 펜션을 연상시켰다. 밤이 되면 처량한 부엉이 울음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은 적막 속에 숨죽인 적도 많았다. 무엇보다 캄캄한 밤하늘에 뿌려진 수많은 별빛을 보고 있노라면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낮과 다른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골 밤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학생 수 약 천 명, 교직원 수 약 60명 정도인 큰 학교에서 갑자기 전교생 17명, 교직원 11명 정도인 작은 학교로 오게 되니 무엇보다 분위기가 달랐다. 큰 학교는 학년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1년이 지나도 서로 모르는 교사도 많다. 그러나 작은 학교는 전 교직원의 친화력이 강점이다. 그러다 보니 공식적인 자리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간혹 커피타임이나 친목 시간에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끈끈하다. 수업 시간은 거의 완전 학습에 가까운 소통이 이루어진다. 물론 다인수학급에서 이루어지는 모둠 활동, 모델화 경험, 사회성 향상이 극히 제한적인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전체 다모임(전교생 모임 가능)을 통한 선 후배 간 소통은 큰 학교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다.


작은 학교에서는 학년이 곧 학급이다. 그래서 교사가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데, 운영의 핵심은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있다. 교사인 나의 적극성과 아이들의 적극성이 서로 마주하는 순간을 경험하는 순간이 쌓여갈 때 알 수 없는 희열도 느낀다. 그랬다. 그 희열은 어느 순간 일어난다.


학기 초 도전 활동으로 2학년 아이들이 자전거를 처음 접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절대 탈 수 없을 거라며 자전거 배우기를 거부했던 아이, 자전거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아이, 다소 용기는 있으나 넘어지는 게 두려워 타기 싫어했던 아이, 두려움을 보여주기 싫어 꾹 참고 도전했다가 결국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 나 혼자 가르쳤으면 도저히 성공하지 못했을 시간에 도움을 주었던 교장 선생님과 도우미 선생님.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뀌는 순간 나타난 아이들의 자기 확신에 찬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작은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모든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제공한다. 자신이 흥미가 있는 다모임을 선택하고, 찾아오는 체험활동을 선택하며, 자신이 잘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각종 프로그램을 만든다. 교사는 이런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한다.

큰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이 처음엔 거부감으로 힘들었다. 마치 관성의 법칙처럼. 그러나 점점 나는 작은 학교 품속에 녹아들었다. 솔직히 숲 속에 자리 잡은 학교와 관사의 영향이 훨씬 크다라고 말하고 싶다.


수업을 하다 가끔 보게 되는 까마귀(아마도)는 교실 창밖에 바로 보이는 잣밤 나무 단골이다. 심심하면 나뭇가지에 먹을 것을 물고 올라앉아 쪼아대고 있는데, 우리는 그럴 때마다 하던 공부를 잠시 멈추고 눈앞에 있는 까마귀를 관찰하곤 했다. 그러면 까마귀는 흘깃 우리와 눈이 마주치고 행여나 자기 음식을 가져갈까 물고 날아갔다.


급식을 먹고 슬렁슬렁 걷다 보면 잣밤나무 아래 잣밤을 까고 있는 청설모와 마주치기도 한다. 다람쥐와 달리 털이 진한 청색 또는 밤색이다. 몸통도 훨씬 크다. 주변을 살피다 좀 더 우리가 다가가면 그제야 나무 위로 쪼르르 올라갔다. 자연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속에 우리도 살며시 발을 담글 때마다 온몸으로 퍼지는 순수한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순전히 이런 자연의 모습이 좋아서 학교를 다시 옮긴 것이다. 일부러 작은 학교를 찾은 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큰 학교가 좀 더 편하지 않냐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맞다. 편하다. 업무가 편한 것이다. 작은 학교는 반면에 업무가 많다. 그러나 나는 다른 무엇보다 나무와 새와 숲이 울창한 학교를 찾아간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3년이 날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은 큰 학교에 나를 맞추기 힘들었기에 나와 맞는 작은 시골 학교를 다시 찾아간 것이다.

KakaoTalk_20250220_232238664.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의 안경